[광화문에서/서영아]“나만 손해 볼 수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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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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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온 지 1년여, 어느덧 각종 포인트카드로 명함지갑 하나가 불룩해졌다.

계기는 이랬다. 몇 달 전 어느 날 피자를 배달시키자 “OO카드 있느냐, ××카드는?” 하는 질문이 쏟아졌다. 카드가 있으면 20∼30%가 할인된다는 얘기다. 귀찮으니 그냥 넘어가려던 내게 배달사원은 귀에 꽂히는 말을 한다. “카드 하나 만드세요. 업체에서 가격 책정할 때 할인분을 다 계산해서 정하니까 할인받지 않는 사람이 손해예요.”

나만 손해 볼 수는 없지. 이후 소위 이동통신회사 카드부터 갖가지 혜택이 주어진다는 신용카드, 대형마트나 동네슈퍼 포인트카드까지 기회 닿는 대로 수집했다. 사실 20% 정도면 꽤 큰 할인율이다. 포인트 적립은 물론이고 일정액 이상 구매할 경우 선물을 주는 등 혜택이 이중삼중으로 주어지는 곳도 적지 않다. 찾아먹는 놈이 임자라지 않던가.

하지만 어느 순간 이건 오히려 현명치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불편했다. 카드를 늘 들고 다니기도 쉽지 않고 일일이 챙기려면 상당한 신경 에너지를 소모한다. 별별 카드가 다 있고 시간대와 장소 등에 따라 다른 서비스가 적용된다. 그걸 죄다 따지다가는 머리가 터져버릴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손해 보지 않고 살려면 왜 이리 조잡하고 번거로워야 할까.

나만 뒤처지지 않겠다는 악착과 아등바등거림은 교육현장에서 더욱 전형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뜨겁다 못해 펄펄 끓는 한국 교육열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곧잘 부닥쳤다. 그때마다 “한국인들은 상승 욕구가 강한 데 비해 사회구조는 안정되지 않아 조금만 노력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란 식으로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학교에 보내보니 공부란 아이의 지적 능력 향상이나 인격 발달을 위해서가 아니고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나만 뒤처질 수 없으니까. 결국 이 각박함은 실은 아이의 서바이벌을 염원하는 마음이자 미래를 불안해하는 피해의식 때문이었다. “나만 손해 볼 수는 없다”는 피해의식은 나아가 “남만 부당하게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최근 인터넷 공간을 달군 각종 논쟁들에서 그런 마음이 읽힌다. 특히 아무리 필사적으로 준비해도 청년실업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는 젊은 세대의 불안감이 크게 다가왔다. 이들에게 청문회에서 드러난 일부 고위층의, 쉽게 살아왔으면서도 대접받는 삶이나 외교장관 딸 특채의 진상은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알맞다. 연예인의 학력위조 논란이나 4억 명품녀 논란 등을 봐도 결국 근저에 깔린 생각은 ‘나만 손해 보며 사는 건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 나아가 ‘내 미래는 과연 안전한가’라는 불안감에 맞닿아 있다. 누리꾼은 이제 여론으로만 재판하지 않고 관련자를 고발하는 등 오프라인에서 실력행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청년들의 생존에 대한 불안은 한국의 미래가 불안함을 뜻한다.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나도 손해 볼 수 없기에 반칙을 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아도 ‘안 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이 먼저 작동한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사회 전역에서 피해의식과 조바심을 부추기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추석 연휴를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되돌아갈 때다. 각박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은 세상을 위한 현명한 길을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다. 단, 손해는 피하면서 말이다.

서영아 인터넷뉴스팀장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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