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반쪽짜리 천안함 보고서

동아닷컴 입력 2010-09-17 20:00수정 2010-09-1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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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13일 내놓은 289쪽의 천안함 보고서는 과학적 조사의 개가(凱歌)다.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군함을 인양해 그 원인을 물적 증거에 의해 규명한 세계 최초의 보고서다. 침몰 해역에서 찾아낸 어뢰 추진체와 선체의 절단 부분에서 검출한 폭약 성분은 북한의 소행임을 결정적으로 증명했다. 민군합동조사단의 결론에 과학적 반론을 펴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성 담은 ‘실패 白書’로 나왔어야


이 보고서에는 조사단 공동단장인 윤덕용 박사와 박정이 대장을 비롯해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조사팀장의 사인과 ‘보고서의 결론에 동의한다’는 확인서도 붙어 있다. 국내외 조사단원 73명을 대표한 이들의 보증은 보고서의 권위를 말해준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곁들인 다양한 사진과 그림, 시뮬레이션 분석 내용은 잘 만든 과학 교과서를 연상시킨다. 별도로 펴낸 영문 보고서와 32쪽의 만화로 엮은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도 천안함 진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알맹이가 빠진 반쪽짜리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어뢰 공격을 할 때까지 낌새도 못 챈 ‘정보의 부재(不在)’와 ‘경계의 실패’, 공격당한 후에도 즉각 무력(武力) 대응을 하지 못한 ‘작전의 실패’, 작전지휘체계의 혼란과 늑장 보고, 국가안보와 장병들을 위험에 빠뜨린 군 수뇌부의 무사안일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없다. 물론 침몰의 원인 규명에 초점을 맞춘 과학적 조사의 결과물이라는 한계에 비추어 조사단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과학적 조사 결과 이상을 담았어야 했다. 북한보다 절대적 우위에 있는 해군력으로도 꼼짝 없이 당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내 고백하고 자책하며,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실패 백서’로 꾸몄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동안 군 당국의 발표와 국방장관의 국회 발언, 대통령의 대(對)국민담화,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통해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언급되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전 장병과 국민을 대상으로 만든 것임을 감안할 때 반성의 자료로 삼을 종합백서가 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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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무기나 장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 전력(戰力)이다. 동서고금의 전사(戰史)에는 그것을 실증하는 사례가 많다. 북한 해군은 소형 잠수정으로 장병 104명을 태운 우리 초계함을 격침하고 달아났다. 이는 무기체계나 성능으로 설명할 수 없다. 첨단과학을 뛰어넘는 정신무장과 안보의식의 문제다. 북한은 스텔스 기능을 가진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세종대왕함)도, 아시아 최대의 상륙함(독도함·1만4000t)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6·25전쟁 이후 60년 동안 안보문제를 미군에 너무 의존한 것도 정신력 약화의 원인이다. 천안함 사건의 위기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는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 스스로 행사해보지 못한 연유도 있다.

정신무장·안보의식이 최대의 무기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비겁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좌파정권 10년간의 대북(對北) 햇볕정책과 유화정책이 끼친 심리적 영향이 크다. 북한 퍼주기는 김정일의 통치역량만 키워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죽어가던 북한 체제를 살려놓은 것도,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로 사상 초유의 군사력을 확보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것도 바로 우리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국민의 안보의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북한의 도발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국민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국방부가 국민과 군의 정신무장 및 안보의식을 높이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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