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영계에 ‘주가드(jugaad)’란 낯선 힌두어가 주목받고 있다. 작년 말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주가드에 대해 토론하는 콘퍼런스가 열렸다. 최근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피터 카펠리 교수 등 유명 경영학자가 주가드 관련 논문을 저명 학술지에 실었다. 미국 언론도 주가드 관련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주가드는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문제점을 개선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인도의 시골 주민들은 구매력이 약해 자동차를 사기 힘들다. 하지만 주가드 정신으로 무장한 주민들은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양수기 모터, 나무판자, 강판 등을 이어 붙여 자동차와 비슷한 이동 수단을 만들었다. 인도인들은 이런 이동 수단도 주가드라고 부른다.
주가드가 서구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인도 기업의 경영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의 철학을 대표하는 ‘가이젠(개선)’과 같은 반열이라고 볼 수 있다. 타타그룹이나 마힌드라&마힌드라(M&M), 인포시스, 릴라이언스 등 인도 글로벌 기업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보니 주가드가 있더라는 게 경영학자들의 진단이다.
타타그룹 사례는 주가드 정신의 유용성을 잘 보여준다.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은 인도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감안할 때 차 값이 2500달러 정도로 낮아져야 구매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고급차에 옵션으로 들어가는 오디오·비디오 시스템 가격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5000달러 이하 자동차는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통념이었다. 대학이나 연구소 등의 기술 인프라도 부족했다. 그러나 타타는 주가드 정신으로 과감하게 부품을 없애거나 모듈화해 목표를 달성했다.
M&M그룹은 농업장비 분야의 세계적 업체인 존디어 제품의 반값에 쓸 만한 트랙터를 내놓아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도 벵갈루루의 나라야나 병원도 자동화 및 표준화를 바탕으로 심장수술 가격을 미국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으며 성공률도 서구 병원만큼 높였다고 한다.
물론 주가드 정신이 항상 긍정적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주가드는 임기응변과 유연성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약해져 자칫 부패로 연결되거나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화에 성공한 인도의 대기업들은 주가드 철학의 긍정적인 측면을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주가드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최근 쌍용자동차의 주인으로 인도 M&M그룹이 거론되고 있어서다. 인도 기업이 한국 기업을 인수한다는 사실에 한국인으로서 정서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 기업들은 주가드 정신에서 알 수 있듯 척박한 환경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데 능하다. 물론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지만 조직 운영 측면에서 인도 경영진은 직원들의 자율권을 인정하고 목표의식과 책임감을 잘 부여한다는 긍정적 평가도 받고 있다.
실제 타타대우상용차도 이런 인도 기업의 장점을 한국 문화와 잘 융합해 실적 향상을 이뤄냈다는 분석이다. 인수협상이 마무리되기까지 많은 절차가 남아 있지만 M&M의 쌍용차 인수가 확정된다면 한국인 특유의 역동성과 인도 주가드 정신이 결합해 새로운 성장 신화를 이뤄내길 기대해 본다. 한국과 인도 양측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신뢰를 형성한다면 이질적인 아이디어의 결합을 통한 창조 혁신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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