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월드컵 축구는 공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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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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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지는 그라운드에 누워 차두리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캡틴 박지성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여서 더 아쉽다”고 했다. 공격 점유율이 54-46으로 앞섰는데도 태극전사들은 우루과이에 지고 말았다. 그래서 의문이 치민다. 축구는 과연 공평한 경기인가.

사랑도, 세상도 불공평하다

제목부터 발칙한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모든 것은 축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사귀게 되면 좋지만 사귀려고 안달할 정도는 아닌 70점짜리 여자와 남자 주인공이 사귀게 된 건 그녀가 FC바르셀로나의 팬이어서였다.

일처다부(一妻多夫)라는 황당한 내용을 영화로 만든 정윤수 감독은 “그냥 사랑의 불공평함에 대한 얘기”라고 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다 알지만, 그러고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랑은 똑같이 주고받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 말에 작가 박현욱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여서 어떤 경우에도 남자가 버릴 수 없는, 너무 사랑스러운 여자임을 납득시키려고 공을 들였는데 영화에선 손예진의 눈웃음 한방으로 해결되더라”고 억울해했다.

어디 사랑뿐이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89분을 잘 싸워도 한방으로 질 수 있는 것이 축구”라며 축구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일깨운다고 했다. 이를 학술적으로 입증한 사람도 있다. 네덜란드 틸버그대학의 경제학자 잰 밴 아워스 교수는 1960년 이후 주요 경기 1500개를 분석한 끝에 “홈팀의 이점과 실력, 행운뿐 아니라 국가정체성이 막판에 승패를 결정한다”며 이 점에선 독일이 단연 앞선다고 했다.

독일 축구가 전쟁을 하듯 경기에 대비하고 무섭게 뛴다는 건 광적인 축구팬 헨리 키신저도 인정한 바다. 그는 “1954년 헝가리를 제외하면 공산국가는 결승전이나 준결승전에 오른 적이 없다”며 계획경제 역시 시장경제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이번에 프랑스가 자중지란의 추태를 보이다 1무2패로 A조 꼴찌 신세가 된 것도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불신하는 이 나라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분석했다. 프로선수들의 엄청난 수입을 부당하다고 여기는 프랑스 국민들, 실력과 노력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 국민에 반발하는 해외파 선수들이 A조 꼴찌를 합작했다고나 할까.

국내감독 휘하에서 원정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한국축구는 아시아 최초로 G20회의를 주재하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상징하는 것 같다. 박현욱이 소설에 썼듯이 ‘경기 내용과 무관하게 강한 정신력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정신력의 축구’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정체성이 한일전이나 남북대결 같은 특정 상대를 만났을 때 주로 통한다는 사실이다. 축구의 묘미도 실은 여기에 있다. 장 폴 사르트르가 심오한 듯 말했지만 쉽게 말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빌 게이츠는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며 여기에 빨리 익숙해지라고 했다.

리더부터 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기 결과에 승복하는 건 축구엔 엄연한 룰이 있고, 월드컵은 4년 후 또 열리며,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자블라니 공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월드컵이 끝난 뒤에나 논의하겠다고 했다. 우리 팀은 자블라니 공에 맞춘 연습으로 16강 신화를 이뤄냈다. 그게 룰이다. 불리해도 내가 적응해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축구장 밖의 세상도 다르지 않다. 국민의 뜻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할 것 같은 민주주의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국가는 헌법과 법을 미리 정해두고 있다. 그게 법치주의다.

모든 결과가 실력대로만 나오는 세상도 좋기만 할 것 같지는 않다. 실력 없는 사람은 살맛이 안 날 테니까. 그렇다고 정권이 어떤 차이든 없애겠다고 권력을 휘두르면 하향평준화가 가속된다. 타고난 능력과 이를 보완하는 사회제도도 중요하지만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세상이 사는 의미를 더해준다. 운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없다. 다행히도 경쟁을 하면 할수록 경쟁력은 올라가게 돼 있다. 그게 프랑스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월드컵 기념으로 나부터 축구와 삶의 교훈을 깨우치면 좋겠지만 삶이 그렇듯 쉽진 않다. 차라리 리더부터 변하는 게 빠르다. 허정무 감독도 그랬다. 2007년 12월 대선 무렵 대표팀 사령탑에 임명돼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과 비슷한 시기에 첫 경기를 치른 그는 독단적이고 고집 센 ‘진돗개’로 유명했다. 그 해 9월 월드컵 최종예선 북한과의 경기에서 1-1로 사실상 패하면서 소통불능의 그가 달라졌다. 박지성에게 주장을 맡기는 등 주변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화합과 긍정의 리더십으로 180도 변신하면서 한국축구의 오늘을 만든 셈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좋아하는 축구처럼 불공평하다. 리더에게는 더 하지만 어쩌랴. 그게 리더의 멍에인 것을.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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