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將星들은 국민을 배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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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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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없어 천만다행이다. 군대간 남의 자식들이 “아빠, 전쟁 나면 어떻게 해” 하며 집에 전화한다는 소문에 한동안 혀를 찼었다. 그런데 10일 감사원의 천안함 감사 중간발표를 보자 이러다 전쟁 나면 큰일이겠다 싶어졌다.

“허위보고, 戰時라면 총살감”

백번 양보해서 폭침을 당한 뒤 허둥댈 수 있다 하자. 천번을 양보해서 경계에 실패할 수도 있다 해주자. 하나 군에서 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군대 못 가본 나도 안다. 천안함 관련 장성급 영관급 직업군인들이 감행한 허위, 왜곡, 조작, 누락보고는 나 같은 민간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김동식 2함대사령관은 천안함에서 “어뢰에 맞은 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합참은 해군 작전사령부에서 21시 15분으로 발생 시점을 보고받고선 45분으로 조작했다. 폭발음을 들었다는 작전사의 보고를 삭제한 것도 합참이다.

천안함 합동조사단이 진상 발표를 하기까지 두 달간 나라를 들끓게 한 논쟁을 생각하면 이건 단순한 보고 잘못이랄 수 없다. 상부와 대통령과 국민을 속였을 뿐 아니라 결국 북을 이롭게 한 이적행위로 보인다. 군형법 제38조(거짓 명령, 통보, 보고)는 군사(軍事)에 관하여 거짓 명령, 통보 또는 보고를 한 사람은 적전(敵前)인 경우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전시 사변 시 또는 계엄지역인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그 밖의 경우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군에 정통한 어느 전문가는 한마디로 “전시 같으면 총살감”이라고 했다.

감사원 발표 뒤 “그대로 수용하기엔 적절치 않은 내용도 있다”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반응은 광우병을 다룬 MBC PD수첩을 연상시킨다. 김황식 감사원장은 “속초함에서 사격한 물체가 북한 반잠수정이라고 한 보고를 2함대사령부가 새떼로 보고하라며 문안까지 불러줬다”는데 김 장관은 “속초함에선 검은 물체라고만 보고했다”며 “속초함과 2함대사령부가 논의하는 과정에서 새떼로 정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PD수첩이 “아레사가 CJD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라고 한 환자의 어머니 말을 자막에서 ‘vCJD(인간광우병)’로 조작한 것과 비슷한 행태다. CJD는 광우병과 전혀 상관없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인데도 제작진은 “환자의 엄마가 혼용했기에 의도를 살려 바꾼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국방부가 위기관리반을 소집하지 않고도 한 것처럼 장관에게 허위보고를 한 것에 대해서도 김 장관은 “소집이 정확히 이뤄지진 않았지만 필요인원은 다 있었다”고 주장했다. 왜곡보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맞는 내용이라는 PD수첩의 주장과 어쩌면 그리도 닮은꼴인지 감탄할 정도다.

군士氣보다 국민이 더 중요하다


기자도 거짓을 사실로 잘못 알고 보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거짓임을 알고도 사실이라고 보도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PD수첩의 왜곡보도를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군 역시 거짓을 보고하고도 끝끝내 잘못이 아니라며 감사원 조사를 탓한다면 개전의 여지가 없다. 이런 장성들을 믿고 단잠을 이뤄도 되는지 의심스럽다.

PD수첩 1심 문성관 판사는 PD수첩 측의 말만 믿고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번 감사원 발표도 중간 결과여서 누구 말이 맞는지는 두고 봐야 안다. 만일 최종결과가 달라진다면 감사원은 잘못 조사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지금까지 감사원에서 해온 모든 조사발표도 의심받을 판이다. 감사원은 명예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건다는 자세로 사실을 밝혀내야 할 처지다.

감사원은 군 고위직 12명에게 형사책임 소지가 있다고 했으나 김 장관이 유보적 태도를 취한 건 부하를 아끼고 군의 사기를 염려한 때문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의 사기다. 전투가 두려워 거짓보고나 해대며 일신의 안녕을 꾀하는 지휘관 밑에 우리 아들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분노를 삭이기 어렵다. 허위보고를 받고도 의심 없이 군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대통령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고도 방치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들은 너무나 유능한 군인이었고, 처벌할 경우 결과적으로 북을 이롭게 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없진 않다. 그러나 이런 장교들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그동안 군 인사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국민을 배반한 장성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무능과 무력(無力)을 만천하에 공개해 북이 환호작약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군에는 정확한 보고를 한 최원일 천안함장 등 중간간부와 침몰에도 비상조명등이 작동되도록 정비해둔 고 최한권 원사 같은 기술군인, 손전등을 갖고 탄약고를 지킨 덕에 동료들을 구할 수 있었던 안재근 상병 같은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직은 우리 군을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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