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후진국형 측근 비리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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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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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본질은 秘線의 국정농단
선진국의 희망, 뒤집힐 순 없다

MB(이명박 대통령)는 외로웠던 모양이다. 6·2지방선거 뒤 그는 “여권 쪽엔 왜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느냐”고 한탄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제 사표 낸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이 작년 말 청와대에서 소란을 일으켰을 때 MB는 야단을 치면서도 측근들에게는 “엘리트보다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다들 이 비서관만큼만 하라”고 두둔했다고 한다.

고용노동과 관련해 그가 얼마나 일을 잘했는진 알 수 없다. 고용노사 정책의 성과도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다만 MB와 같은 포항 출신의 그가 동향인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으로부터 민간인 사찰 보고를 받았다는 의혹이 거센 상황이다. 김대중 정권 때 국정원장으로 1800명을 도청해 구속됐던 신건 민주당 의원의 폭로니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역시 동향(TK)인 박영준 국무차장이 있는 총리실 소속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각 부처 현안부터 육군 인사까지 전방위 보고를 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총리실과 민정수석실은 이들에게 아무 보고도 못 받았다는데 박형준 정무수석은 일찌감치 “(사찰과 관련해) 대통령은 보고 받은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대체 MB는 이 비서관의 무엇을 보고 그가 ‘현장’을 잘 안다며 다들 이 비서관만큼만 하라고 했단 말인가.

MB동향 비공식라인의 민간인 사찰, 선진국민연대의 인사개입설이 꼬리를 물면서 막장드라마 같은 권력투쟁 폭로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청와대 비선(秘線)조직의 존재와 불법행태이고, 측근의 인사개입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신설된 2008년 7월의 정황을 보면 MB의 외로움은 능히 짐작된다. 선진국민연대를 이끌며 대통령 만들기에 몸 바쳤던 당시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 촛불시위 와중에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작심 공격을 받고 떠났다. 한나라당조차 “인사실패가 무능 및 부도덕 인사로 이어져 국정실패까지 초래했다”며 부글댔다. 인사쇄신이 필요한데 경찰과 검찰이 잘 움직이지 않아 인물검증도, 감찰도 힘들어지자 이 조직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간인에게는 가족이 사회적 안전망이듯 권력자 최후의 안전망은 피붙이거나 피붙이 같은 측근일 수밖에 없다. 촛불시위 때 MB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 시위대의 ‘아침이슬’을 들으며 자책했다”며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촛불시위는 좌파 반정부세력이 부추긴 대선 불복종 운동이었다.

정권 흔들기가 기승을 부릴수록 ‘내 사람’은 절실해진다. 의혹 속의 등장인물은 우연찮게도 죄 MB동향이다. 박 차장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조직이라는 의혹을 부인하지만 그의 충성심을 의심하거나 그가 SD(이상득 의원) 사람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민간인 조사의 핵심은 노무현 정권의 공신 이광재 강원지사와의 관계였다. 민간인인줄 몰랐다지만 명색이 비선 조직인데 전 정권 실세와 반정부세력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게 민간인의 상식이다.

MB는 어설픈 사람들의 권력남용 사례가 간혹 있다며 ‘문제가 확인되면’ 엄중 조치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그러나 자신이 극찬했던 이 비서관이 뭘 하는지 몰랐다면 MB는 고향사람에게까지 속은 무능한 대통령이고, 알고도 모른다고 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일이 된다. 만일 검찰과 민정수석실이 조사한 후 “물의는 있었으나 위법은 없다”는 정도로 끝낼 경우 민심이 들끓어 그야말로 국기(國基)가 흔들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사태를 수습하는 길은 국정책임자 MB가 잘못을 사과하고 인사개혁으로 바로잡아 국민정서를 달랜 뒤, 경제로 ‘능력’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 MB나 한나라당이 좋아서도, 예뻐서도 아니다. 그러지 않고는 경제성장을 혐오하는 시대착오적 좌파세력도 아닌, 종북(從北)세력에 다음 정권이 넘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도 측근을 공직에 앉히지 않는 권력자는 없다. 측근기용(cronyism)은 인간본성에 가깝기에 낙하산 인사가 유독 무능하거나 뇌물을 밝히지 않는 한 그냥저냥 용납된다. 그러나 측근에 맡긴 비선 조직의 무소불위 사찰이나 국정농단을 묵인한다면 다른 문제다.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돌아서 아무리 꼭 필요한 정책도 안 먹힐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반정부세력이 김정일 북한정권과 함께 국가안보와 체제를 위협하는 처지에선 측근 발호는 더욱 엄하게 다스러야 한다.

더구나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인구감소가 시작되는 2020년까지 선진국 진입을 위해 뛰지 않으면 미래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평생 허덕여야 한다. 좌파정권으론 잘살게 될 수 없다는 국민적 각성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이명박이었다. 선진국의 문턱에 다가섰는데 어설프게 기회를 놓친다면, 설령 그가 다른 일을 아무리 잘해도 용서받기 힘들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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