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 모두를 미소 짓게 하는 正義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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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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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통령도 ‘정의란 무엇인가’ 대열에 합류한 것 같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은 캐피털사의 금리가 40∼50%라는 말에 “큰 회사들이 비싼 이자를 받는 게 사회정의상 괜찮은 거냐”고 말했다. 화제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어려운 도덕 질문을 던지며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 정의라고 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캐피털사의 실제 금리가 그보다는 낮고, 대통령이 “대출받아 갚으라”고 일러준 미소금융은 영세사업자금을 빌려주는 곳이지 ‘묻지 마 서민대출’ 창구는 아니라고 해봐야 소용없다. 금융감독위가 곧장 캐피털사 실태조사에 들어갔으니 대통령 말대로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한다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금리를 낮출 공산이 높다. 정의사회 만세다.

다만 작년 9월 미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되기 석 달 전, 같은 주제를 달리 다룬 아마르티아 센의 ‘정의라는 아이디어’란 책이 나왔다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어제 구글 영문판을 검색해보니 센의 책 관련 항목(574만 건)이 샌델(235만 건)보다 많다. 공교롭게도 둘 다 하버드대 교수인데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009년 올해의 책으로 샌델 아닌 센의 책을 선정했다.

우리나라엔 ‘정의란 무엇인가’만 번역돼 담론을 장악했지만 지구촌에선 또 다른 정의가 더 주목받고 있으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좌파 측은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대(對)정부 공격으로 재미를 보고, 정부는 정의라는 프레임에 말려드는 형국이다.

공동善이냐, 선택할 능력이냐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철학자인 센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 자체가 좋은 출발점이 아니라고 밝히고 들어간다. 정의(正義)에도 여러 정의(定義)가 있고, 사람마다 가치와 판단이 다르므로 절대적 정의를 찾는 사회가 오히려 정의롭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누가 봐도 정의롭지 않은 노예제도나 여성참정권 거부 같은 제도부터 없애되, 그것도 실제로 벌어질 결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샌델이 공동선을 강조하는 데 비해 센은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 두 사람의 큰 차이다. 둘 다 공공의료를 지지하지만 샌델이 도덕적 의무를 이유로 드는 반면 센은 자기 삶을 선택할 능력을 가지려면 건강이 기본이라는 점을 든다. 샌델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하는 공립학교를 정의로 꼽는데 센은 아니다. 어떤 교육이 좋은지에 대한 판단은 다양하기 때문에 정부가 기준을 정하는 데 반대한다.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 헷갈리는 사람에게 우리나라에선 번역돼 나오지 않아 안타깝지만 ‘또 다른 웨스 무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2000년 로즈 장학생이 돼 신문에 실렸던 웨스 무어라는 사람이 비슷한 시기 신문에서 살인죄로 복역 중인 동명이인을 발견하고 그의 삶을 추적해 쓴 실화다. 둘 다 흑인이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불량소년이었던 저자는 어머니가 엄한 꾸중 끝에 허리끈을 졸라매고 보낸 사립학교와 군사학교 교육 덕에 자기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살인자인 또 다른 무어 역시 비행소년이었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다가 결국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됐다는 내용이다.

불법과 不正타파가 정부의 정의

샌델의 시각에서 본다면 사회적 약자인 무어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공동선일 수 있다. 하지만 센의 시각으론 범죄자 무어가 어릴 때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키워주지 않았던 교육이 정의롭지 못하다. 센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 나로선 샌델만 아는 것도 정의의 한쪽만 바라보는 편향이다 싶다.

센은 돈과 웰빙만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다. 한편에서 공동선이라고 믿는 것이 다른 편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개인 사이도 그렇지만 정부가 모든 갈등을 단칼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관점에서 공공의 이성적 추론(public reasoning)을 통해 실현가능한 일부터 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센의 견해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부자 정권’이란 비판이 억울하고 지방선거 패배가 뼈아픈 정부로선 갈 길이 바쁠 터이다. 나중에야 어찌되든 서민정책을 쏟아내고, 대기업을 쥐어박기까지야 않겠지만 선순환 고리를 만들기(청와대 표현) 위해 공권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정의사회 구현을 내걸고 민주정의당을 만들었던 1980년대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정부가 정의의 화신이 되려는 건 위험하다. 가치관에 따라 능력을 키우며 공동선을 모색하는 건 각자에게 맡기고, 정부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불법과 부정부터 없앨 일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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