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충제’에 희망 거는 말기 암 환자들…의사들은 왜 말릴까 [건강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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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버멕틴은 가축 구충제로 주로 쓰이며 사람에게는 머릿니나 옴 같은 기생충 감염 치료에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버멕틴은 가축 구충제로 주로 쓰이며 사람에게는 머릿니나 옴 같은 기생충 감염 치료에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은퇴한 스포츠 스타가 표준 함암 치료와 함께 원래 기생충 감염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인 이버멕틴(Ivermectin)으로 암과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론 두과이(Ron Duguay) 는 캐나다 출신의 전 NHL(북미 아이스하키 리그) 선수다. 그는 NHL 통산 864경기에 출전해 274골, 34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뉴욕 레인저스에서 오랫동안 뛴 그는 실력뿐 아니라 긴 곱슬머리와 화려한 이미지의 ‘셀럽’으로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2024년 4기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ABC뉴스에 따르면 그는 의료진이 제공하는 항암화학요법과 함께 이버멕틴을 복용해 왔다. 현재 한 임상시험에 참여하느라 복용을 중단했지만, 시험이 끝나면 다시 복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NHL에서 활약할 당시의 론 두과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NHL에서 활약할 당시의 론 두과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버멕틴은 원래 말이나 소 같은 동물의 기생충 감염을 예방·치료하는 구충제다. 사람을 대상으로는 머릿니나 옴, 주사비(딸기코)를 치료하는 데 제한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병원 진료 후 머릿니나 옴 치료 등에 제한적으로 처방된다.

지난 5월 ‘미국의사협회저널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2025년 1~7월 이버멕틴 처방률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증가 폭은 백인 남성과 남부 지역에서 특히 컸다.

이 같은 현상에는 배우 멜 깁슨의 발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멜 깁슨은 2025년 1월 영향력 있는 팟캐스터인 조 로건과 인터뷰에서 “4기 암이었던 친구 3명이 구충제인 이버멕틴과 펜벤다졸(fenbendazole)을 복용한 뒤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 6000만 회 이상 조회됐다. 이중 펜벤다졸은 동물용으로만 승인된 약물이다.
멜 깁슨은 2025년 1월  팟캐스트에 출연해 말기 암 환자였던 친구 3명이 구충제를 먹고 완치됐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캡처.
멜 깁슨은 2025년 1월 팟캐스트에 출연해 말기 암 환자였던 친구 3명이 구충제를 먹고 완치됐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캡처.

일부 동물·세포실험에서 이버멕틴이 암세포 성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된 바는 있지만, 실제 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는 아직 없다.

UCLA 데이비드 게펜 의과대학의 존 마피 교수는 ABC 뉴스와 인터뷰에서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가장 신뢰도 높은 근거인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이버멕틴의 항암 효과는 아직 입증된 바 없다”라고 말했다.

미 식품의약청(FDA)은 이버멕틴을 사람이나 동물의 어떤 종류의 암 치료제로도 승인한 적이 없다. 또한 이를 암 치료법으로 권고하는 공식 임상진료지침도 없다.

그럼에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구충제 항암 치료에 관한 게시물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

마피 교수는 “문제는 환자들이 효과가 입증된 암 치료를 미루거나 아예 받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환자들이 검증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기존 암 치료 대신 대체의학을 선택한 환자들이 표준 치료를 받은 환자들보다 사망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양 전문의들은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일부 환자가 의료진 조언을 무시하고 이버멕틴을 복용하기로 결정했다”며 “환자들 중에는 다시 병원을 찾지 않거나 몇 달 뒤 암이 악화된 상태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의사의 처방이나 감독 없이 이 약을 복용할 경우 과다 복용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마피 교수는 “매우 높은 용량을 복용하면 발작이나 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다”며 “극히 드물지만 용량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전역 53개 독극물센터를 대표하는 미국 독극물센터협회(America’s Poison Centers)가 ABC 뉴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버멕틴 관련 독극물센터 신고 건수는 2024년과 2025년 사이 두 배로 증가했다. 다만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전화를 걸었는지, 또는 어떤 질환 치료를 위해 이 약을 복용했는지는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다.

유타대학교 헌츠먼 암연구소의 스카일러 존슨 박사는 CIDRAP News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에게서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용량은 사실상 독성 수준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더 적은 용량이라도 항암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메스꺼움과 구토를 악화시켜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암학회(American Cancer Society)에 따르면 종양내과 전문의 메리 제니퍼 마컴 박사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환자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새로운 치료법이라면 언제든 환영한다”면서도 “무작정 아무 약이나 복용하면서 효과가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부 암 환자들이 이버멕틴에 희망을 거는 배경에는 절박함이 있다. 기존 치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더 이상 선택할 대안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작은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희망과 근거는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직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물을 검증된 암 치료 대신 사용하는 것은 환자에게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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