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풀기 vs 배 가르기…삼계탕 첫 공략 부위는? [이설의 한입 스토리]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20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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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지호한방삼계탕 양재역점. 뚝배기 마라탕에 커다란 닭이 함께 담겨 나왔다. 이달부터 계절 메뉴로 선보인 ‘마라 삼계탕’이다. 기존 삼계탕 국물에 얼얼한 마라 향을 더한 메뉴다. 찹쌀밥과 닭고기가 매운맛을 중화하면서 삼계탕 특유의 한방 풍미가 은은하게 올라왔다. 이곳 진채훈 과장은 “마라탕을 즐기는 20, 30대 여성들을 겨냥한 메뉴다. 맵기 정도는 가장 매운 라면보다 조금 덜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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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회사원 김세나 씨는 올해 특별한 초복을 준비 중이다. 닭이 다리를 꼰 모양의 ‘삼계바람떡’을 부모님 선물로 예약해 둔 것. 그는 “매년 초복에 가족과 삼계탕이나 치킨을 먹었는데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양한 관련 디저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앙증맞은 모양의 떡 선물로 부모님께 즐거움을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복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초복은 7월 15일, 중복은 7월 25일, 말복은 8월 14일이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인 복날,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몸을 보하는 풍습을 ‘복달임’이라 한다. 일 년 내내 각종 산해진미로 복달임이 가능한 요즘, 복날 풍경도 변화를 맞았다. 영양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유행 음식을 보양 음식과 결합하거나 닭 모양 디저트를 주고받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지호한방삼계탕’에서 올해 6월 계절메뉴로 출시한 ‘마라삼계탕’. 이설 기자 snow@donga.com
‘지호한방삼계탕’에서 올해 6월 계절메뉴로 출시한 ‘마라삼계탕’. 이설 기자 snow@donga.com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계옥’의 ‘바질 삼계탕’. 이설 기자 snow@donga.com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계옥’의 ‘바질 삼계탕’. 이설 기자 snow@donga.com


복날=삼계탕 공식, 언제부터?
복날 기원은 중국 진나라 시대로 알려져 있다. 여름철 무더위와 역병을 물리치기 위해 개를 잡아 제사를 지내던 풍습이 한반도로 건너와 ‘복달임’이 됐다.

조선 시대 보양식은 신분에 따라 갈렸다. 서민층은 개장국을, 양반과 사대부는 육개장이나 도미탕, 민어탕을 즐겼다. 닭고기는 맹물에 푹 고아 낸 백숙이나 닭국 형태로 소비했다.

1900년대 들어서도 복날의 주류는 개장국이었다. 1940년 개장국은 ‘보신탕’으로 이름을 바꿨다. ‘개’ 자를 삭제하고 몸에 좋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몸(身)을 보(補)하는 탕’이라는 뜻을 담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언론에서 개고기 문화를 비판하자 ‘영양탕’, ‘사철탕’, ‘보양탕’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복날에 보신탕을 즐기는 문화는 1990년대 이후까지 지속됐다. 1989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울 시민 10명 중 4명이 보신탕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고, 1996년 한 설문에서는 최고의 건강식품 1위(37%)로 꼽히기도 했다.

‘복날=삼계탕’이 공식화된 건 5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 닭고기는 맹물에 고아 낸 백숙이나 닭국 형태로 소비했다. 백숙에 인삼 가루를 넣은 삼계탕의 원형이 등장한 건 1920년대 전후의 일이다.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은 부재료라는 뜻에서 ‘닭 계’ 자를 앞세워 ‘계삼탕(鷄蔘湯)’이라 불렀다.

삼계탕이 주요 보양식이 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양계업의 현대화, 냉장 시설의 발달, 인삼의 대중화가 맞물리면서 삼계탕이 주요 여름 보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에는 닭 속에 수삼을 통째로 넣는 현재의 모습을 완성하며, ‘삼’을 앞세운 이름으로 보양의 효과를 알렸다.

1990년대 이후 보신탕의 몰락으로 삼계탕은 날개를 달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로 외신의 보신탕 문화 비판과 반려견 대중화가 겹치면서 개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당시 보신탕은 대대적으로 단속한 반면 삼계탕은 미디어에서 복날 대표 음식으로 적극 소개했다. 이후 마치 힘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보신탕 섭취 문화가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식 세계화로 삼계탕을 찾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통째로 나오는 닭을 어디부터 해체해야 하는지 난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정답은 없지만 서울 종로구 ‘토속촌삼계탕’ 매니저는 “다리부터 뜯고 가슴살을 맛본 다음 찹쌀을 국물에 적셔 먹길 권한다”고 했다. 다리부터 제거하면 나머지는 자연히 해체가 되며, 찹쌀을 먼저 먹으면 고기 맛을 온전히 음미하기 어렵다는 것.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계옥’ 직원은 “가슴부터 갈라 찹쌀을 국물에 풀어도 되고 다리나 날개 같은 부드러운 부위부터 공략해도 된다. 정답은 없다”고 했다.

경기 시흥시 ‘퓨전굽는삼계탕’의 ‘눈꽃 굽는삼계탕’. 닭을 구워 기름기를 뺀 뒤, 달궈진 돌판 위에 전복, 은이버섯 등과 함께 육수를 부어 끓여 낸다. ‘퓨전굽는삼계탕’ 제공
경기 시흥시 ‘퓨전굽는삼계탕’의 ‘눈꽃 굽는삼계탕’. 닭을 구워 기름기를 뺀 뒤, 달궈진 돌판 위에 전복, 은이버섯 등과 함께 육수를 부어 끓여 낸다. ‘퓨전굽는삼계탕’ 제공


마라·바질·트러플 삼계탕
“상황에 맞춰 복날을 이벤트처럼 보냅니다. 치킨 쿠폰을 선물하기도 하고 초복에 약속이 있으면 음식을 먹기도 합니다.”

대학생 신미소 씨는 “부모님은 복날을 챙기는 편이지만, 본인과 친구들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보낸다”고 했다. 구미가 당기는 이벤트가 있거나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으면 지갑을 여는 정도라는 것.

식품업계에 따르면 20, 30대 세대는 자유롭게 복날을 즐기는 편이다. 주 교수는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에 초복은 생존형 영양 보충 성격이 강했다. 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 지금은 마케팅과 만나 가볍게 즐기는 날로 변모했다”고 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20, 30대도 복날에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보내려는 경향은 있다. 다만 치킨, 야키토리, 찜닭, 간편식, 베이징 오리 등으로 즐기는 범위가 넓은 편”이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복날 음식은 다변화하고 있다. 우선 삼계탕은 이색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개성을 더하는 중이다. 대표 메뉴는 마라 삼계탕이다. 삼계탕 전문 식당과 마라탕 식당은 물론 중국집에서도 ‘삼계 짬뽕’ 같은 계절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이국적 풍미를 더한 삼계탕도 있다. 서울 강남구 ‘삼계옥’의 바질 삼계탕은 바질 페스토를 삼계탕에 듬뿍 넣은 메뉴로, 이탈리아 요리를 하던 셰프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트러플 삼계탕’ ‘쑥 삼계탕’ ‘흑임자 삼계탕’, 흰목이버섯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눈꽃 삼계탕’ 등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리법을 변형한 삼계탕도 있다. 경기 시흥시 ‘퓨전굽는삼계탕’은 ‘물에 빠진 삼계탕’의 틀을 깬 굽는 삼계탕을 선보인다. 닭을 구워 기름기를 뺀 뒤, 달궈진 돌판 위에 전복, 은이버섯 등과 함께 육수를 부어 끓여 낸다. 임희국 사장은 “닭고기는 고온에 끓일수록 내부의 육즙과 핵심 감칠맛이 국물 속으로 빠져나간다. 본연의 쫄깃한 식감과 풍미를 지켜 내기 위해 닭을 물 밖으로 꺼내 불판 위로 올렸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떡카페 ‘미벗’의 ‘삼계바람떡’. 올해에는 매운 맛 열풍을 참고해 ‘불닭바람떡’도 출시할 예정이다. ‘미벗’ 제공
서울 종로구 창신동 떡카페 ‘미벗’의 ‘삼계바람떡’. 올해에는 매운 맛 열풍을 참고해 ‘불닭바람떡’도 출시할 예정이다. ‘미벗’ 제공


한 그릇 2만원…간편식 삼계탕 인기
영양을 가미하거나 닭 모양을 본뜬 디저트로 복날을 기념하는 문화도 보편화됐다. 병아리 모양 화과자나 빵을 비롯해 ‘홍삼 양갱’, ‘인삼 빙수’, ‘닭 다리 아이스크림’ 등을 즐기는 이들이 늘면서 관련 신제품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떡 카페 ‘미벗’은 지난해 삼계탕 모양의 ‘삼계바람떡’에 이어 올해 ‘불닭바람떡’을 준비하고 있다. 조윤호 미벗 대표는 “지난해 초·중복을 겨냥해 삼계탕 모양의 제품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며 “올해엔 매운맛 트렌드를 반영해 불닭바람떡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고물가와 무더위에 가정간편식(HMR)으로 복날을 즐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19일 신세계푸드는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삼계탕 간편식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기준 삼계탕 가격은 1만8154원이었다. 1년 전보다 2.8%, 5년 전과 비교하면 25.5% 오른 가격이다.

끓이기만 하면 뚝딱 완성되는 ‘하림 삼계탕’은 조리법을 변형해 즐기는 제품으로 인기가 높다. 하림 마케팅팀 관계자는 “하림 삼계탕은 담백하고 깊은 맛 덕분에 여러 재료와와 잘 어우러진다. 간단히 재료를 첨가해 바질, 카레, 마라 삼계탕 등으로 변형할 수 있다”고 했다.

‘올반 삼계탕’(신세계푸드), ‘비비고 영양 삼계탕’(CJ제일제당) 등 전통 삼계탕은 물론 이색 풍미를 더한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능이 삼계탕’(오뚜기), ‘파로 삼계탕’ (신세계푸드), ‘호밍스 녹두 삼계탕’(청정원) 등이 대표적이다. 하림의 ‘구워 먹는 닭’ 시리즈, GS25의 ‘한 마리 민물장어 덮밥’과 ‘전기구이 한 마리 통닭’처럼 구이 형태나 도시락도 1인 가구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름철 대표 보양식인 삼계탕의 그릇당 가격이 2만 원(서울 기준)을 호가하면서 간편식 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림’ 제공
여름철 대표 보양식인 삼계탕의 그릇당 가격이 2만 원(서울 기준)을 호가하면서 간편식 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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