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親서민내각의 우파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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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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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보니 아빠가 사장이면 얼마나 좋을까.” 한 여중생이 한숨을 쉬며 내뱉어 제 엄마를 기함하게 만든 소리다.

앞으론 이런 말로 경악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서 보니 사회적 배려 대상자면 얼마나 좋을까.”

정부가 18개 새 자율형사립고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 내신 최저기준을 없앴다.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자녀 등이 대상이다. 대학입시에도 이들만의 특별전형이 늘어나니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부럽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판이다. 그렇다고 자녀를 위해 계속 가난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랴 싶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다.

4인 가구 월 소득이 165만 원 미만인 기초생활수급자 148만 명 중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29만 명이다. 이보다 수입이 많아지면 교육비 지원까지 끊기니 차라리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이가 적지 않다.

1996년 미국 민주당 정부가 복지혜택을 5년으로 끊고 자립하라며 등을 떠민 것도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당시 냉혹하다고 비판받았지만 지금은 성공한 개혁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어제 총리 후보자와 내각 진용을 발표하면서 친(親)서민 국정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 홍준표 위원장은 아예 ‘우파 포퓰리즘’을 내걸었다. 좌파가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국민은 이에 현혹돼 표를 던지니, 다음 정권을 내주는 것보다 우파도 포퓰리즘을 하는 게 낫다는 충정일 터다. 하지만 우파든 좌파든 포퓰리즘으로 잘못된 역사는 나치 독일부터 페론의 아르헨티나까지 넘쳐난다. 더구나 이 정부는 포퓰리즘에 매달리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대중영합 정책에 잘된 나라 없어

첫째, 나중에 나라가 흔들리든 재정이 파탄 나든 당장 포퓰리즘으로 뜨려면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현재 한나라당엔 그런 사람이 없다. 홍 위원장이 ‘모래시계 검사’로 주목받았다지만 당 대표 경선에 졌다고 사사건건 발목 잡는 함량으론 리더 자격도 의심스럽다. 김태호 후보자도 총리가 돼 대통령의 입만 보고 일할 경우 지금 지닌 참신한 이미지마저 잃을 우려가 있다.

둘째, 포퓰리즘의 특징이 대중 대(對) 엘리트로 편을 가르는 거다. 정부와 여당은 벌써 중소기업=서민=선, 대기업=부자=악으로 국민을 분열시켰다. 말로는 통합을 외치면서 좌파정권 뺨치는 ‘증오 정치’를 해선 다수 국민을 위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기업과 부자들을 ‘살찐 고양이’라며 포퓰리즘 대열에 앞장섰지만 지지율은 최악 수준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뉴욕타임스는 “정부보다 현명해진 보통사람들이 이젠 대기업 아닌 큰 정부가 더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셋째, 포퓰리즘이 나라를 재앙에 빠뜨리는 가장 큰 이유는 대중에 영합하느라 문제의 근본을 해결 못하고 되레 악화시켜서다. 오랜 포퓰리즘에 시달렸던 콜롬비아의 대니얼 메지아 교수는 “분배 위주 포퓰리즘은 인적투자를 외면하는 등 소외계층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해 소수엘리트 지배를 확고히 할 뿐”이라고 했다.

좌파 교육감들의 무상급식 주장은 교과서적 예가 될 수 있다. 모든 초중고교생에게 무상급식을 하려면 이미 저소득층 자녀와 농어촌에서 하고 있는 급식예산을 빼고도 매년 1조9600억 원이 필요하다. 이런 돈이 있으면 교원평가를 반길 만큼 유능한 교사를 더 뽑거나 맞춤식 교육을 하는 게 교육경쟁력을 높여 소외계층이 제 힘으로 가난을 벗어나는 데 보탬이 된다.

서민이 ‘서민계급’에 안주하게 만드는 정부는 반(反)서민이다. 자립의지와 능력을 갖고 일하게 해줘야 진짜 친서민이다. 평생 배려의 대상으로 사는 인생이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남이 낸 세금으로 사는 이가 많아야 진보이고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이라면, 나는 반대다.

리더가 진정 국민과 국익을 위해 꼭 필요한 결정을 내리면 대중은 받아들인다.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리는 치명적 정책을 발표했는데도 거꾸로 지지율이 오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산증인이다.

사실과 진심이 선동정치 이긴다


캐 머런의 선거자문을 맡았던 전략가 빌 크냅은 양극화가 극심한 정치난국을 헤쳐 나가는 핵심이 리더십이라고 했다. 좌우연합내각으로 출범했지만 좌우파 리더들은 국정목표의 공통점을 찾아냈고, 당내 강경파의 발목잡기를 이겨냈으며,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력해야 할 정책에 대해 국민에게 신속히, 충분히, 진심을 다해 설명했다.

국민은 정치꾼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많이 알고 있다. 민주당이 재·보선에서 패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자유시장경제와 효율적 정부가 성장과 발전을 가져온다는 경제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선거결과가 나올 때마다 “국민은 현명하다”는 우리 정치인들이 돌아서선 딴소리하는 걸 보면 역시 그들이 더 어리석은 모양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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