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맛은 혀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술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피곤한 의무가 되기도 한다. 시인이 반긴 술자리는 바로 그 차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술 자체보다 먼저 자기 취향을 알아주는 사람을 반겼다. 그 자리는 접대도 아니고 체면도 아니었다. 돗자리 대신 잡초를 깔고, 잔 돌리는 순서마저 흐트러질 만큼 마음이 풀린 자리였다. 마침내 시인은 자기 자신조차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고, 바깥 사물의 귀함도 자연스레 빛을 잃는다.
도연명이 말한 ‘깊은 맛’은 술맛이 아니라 삶의 맛이다. 공연히 명리(名利)에 쫓기다 보면 정작 마음이 머물 곳은 자주 놓치게 된다. 그가 붙잡은 것은 바로 그 조급한 매임이 느슨해지는 순간이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되는 때, 사람은 비로소 무엇이 자신을 붙들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술의 깊은 맛은 어쩌면 바로 그런 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