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혜숙]정치에 출렁이는 교육은 나쁘다

  • 동아일보

교육과 정치는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과거에는 답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낸다는 목표를 가진 교육은 본질상 규범적이고 이상 지향이어서 이상보다는 현실에 기반하며 비합리와 술책이 난무할 수 있는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고 했다. 우리 헌법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선언한 맥락이나 이승만 정부 당시 교사가 선거에 동원된 부정 사례를 교훈으로 삼는 것은 이러한 시각을 대변한다.

반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미 교육 현상에 정치성이 너무 많이 배어 있어서 정치에 초연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느니 차라리 교육과 정치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교육이 정치를, 혹은 정치가 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관점이다.

양쪽 주장이 나름대로 일리 있지만 국민은 이번 6·2지방선거 과정에서 교육과 정치의 문제로 심한 혼란을 경험했다. 선거에서 후보자는 늘 정당의 등판 번호를 달거나 무소속이었는데 이번에 ‘교육’ 자가 붙은 후보는 정치적 중립의 필요성에 따라 정당이 없다면서도 공약은 물론 의상 색깔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전략을 구사했다. 교육감 선거에서 정치성과 관련한 표리부동 문제가 발생하니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로 정치성을 확실히 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당선된 교육감의 일부가 인수위 자문위 태스크포스(TF)팀을 자신의 정치적·이념적 성향과 같은 인사로 채우고 있다. 각자의 색깔대로 정책을 만들 생각인 것 같다. 6개 시도는 이른바 진보 성향 교육감이 당선되었다는데 공공연히 연계가 거론되는 가운데 향후 교육행정에서 진보 보수 진영 간에 땅따먹기의 승자가 누구냐에 따라 교육정책도 흑백으로 갈리는 심각한 대결 구도가 우려된다.

혹자는 대통령 시장 도지사도 자신의 성향에 따라 정책을 만들고 같은 성향의 사람과 일하는데 교육감도 이와 마찬가지일 뿐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묻고 싶다. 일반 정치에서도 반대 목소리를 함께 담지 못하고 모두의 대통령, 모두의 시도지사가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때 패거리 정치가 되어 얼마나 많은 사회 갈등을 가져왔는가? 누구보다도 교육감은 통합의 차원에서 모든 이들의 교육감이 되는 데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에서 당파성 이념성 정치성을 최대한 배제해야 할 근본적 이유는 그 효과가 어느 분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기적이라는 특수성에 근거한다. 무상급식, 학업성취도평가, 자율형 사립고 확대가 어느 시도에서는 이루어지고 다른 곳에서는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타당하지 못하다. 해당 시도의 특색에 맞는 교육정책이어서 달라지는 것이라면 백번 환영할 일이지만 정당에 발맞춰 일률적으로 달라진다면 심각하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4년마다 정반대의 정책이 나타날 때 개별 학생은 대학 졸업 때까지 왔다 갔다 하는 정책 속에서 발전을 저해당할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성취도평가를 받다가 6학년 때 이사 가니 평가가 없고 중3이 되니 다시 평가를 받는다면 전혀 교육적이지 못하다.

일반 행정이라면 4년마다 정책이 바뀔 때 부담이 있지만 보완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교육정책과 교실 현장이 지역별 시기별로 요동친다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크다. 경제정책은 분기로, 길게 잡아 5년 계획을 세워 추진하면 되지만 교육은 20년 후에야 효과가 나타나는 장기 사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하는지 참뜻을 되새겨야 한다. 원론으로 돌아가자. 교육은 덜 정치적이어야 한다.

김혜숙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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