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종교와 정치(2)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6일 03시 00분


내 이럴 줄 몰랐다. 사찰 직영화로 마찰을 빚던 서울 봉은사와 조계종 총무원이 대화를 한다고 하기에 ‘수행자들은 다르구나!’ 했는데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 같다. 지난달 25일 ‘종교와 정치’라는 칼럼에서 기대한 대로 서로 대화가 이뤄지는 듯하더니 돌연 말싸움이 재개되고 정치판의 가세로 ‘편싸움’이 됐다. 정치의 밥그릇 앞에 스님의 법그릇이 깨질 판이다.

먼저 봉은사 명진 주지가 다시 나섰다. 그는 11일 법회에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만나 승리를 기원하는 건배사를 했다.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김영국 씨에게 전화를 걸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강남 좌파 주지 발언을 확인하는) 기자회견을 막으려 하면서 쌍욕을 다했다”고 말했다. 불똥이 총무원 청와대 국회로 튀면서 2라운드가 벌어졌다. 사흘 전 8일에는 ‘불교계 386’의 주도로 출범한 불교자주실천운동본부가 ‘안상수 퇴진’ 서명 운동을 벌였다.

명진 스님의 2차 폭로에 총무원은 격앙됐다. “막말에 가깝다. 자승 스님은 건배사를 한 적 없으며 종단 수장에 대해 거짓 주장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수석도 “김 씨와 통화한 적 없다”고 했다.

다음 날 봉은사 측은 “당시에는 본인들이 자랑스럽게 떠들던 일들을 왜 이제는 허위 사실이라며 감춰야 하는지 속 시원하게 답해 달라”고 총무원에 맞선 뒤 “고소를 일삼는 이 수석은 명진 스님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즉각 고소하기 바란다”고 했다. 총무원 측은 혀를 찼고, 이 수석은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대통령을 수행하는 도중인 13일 명진 스님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정치판도 부채질했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은 12일 국회 질의에서 “봉은사 (직영화) 외압은 동국대 약대 신설과 바꾼 권력형 비리”라고 비난했다. 총무원은 “봉은사 문제와 별개인 동국대 약대 신설을 작위적으로 왜곡했다”며 14일 여의도 민주당사를 항의 방문했다. 같은 날 민주당은 “좌파 스님 탄압을 시작하는가”라며 이 수석을 비난했다.

사나흘 사이 공방의 전선이 숨 가쁘게 확대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김동건 참여불교재가연대 상임대표 등이 중재한 30일 공개 토론회가 얼마나 진전될지도 불투명하다. 명진 스님이 다시 폭로에 나선 이유는 총무원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만, “봉은사의 자중자애를 촉구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김 대표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부처님 오신 날(5월 21일)까지 해결했으면 하는데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봉은사와 총무원은 너무 멀리 나갔고 정치도 너무 깊이 들어갔다. 자승 스님은 한나라당과 밀통한 수장으로, 명진 스님은 거짓 막말을 하는 스님이 돼버렸다. 이 지경이라면 양측의 토론회를 넘어 끝을 보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도 펼쳐야 한다. 안상수 대표는 물론 자승 명진 스님, 이동관 수석, 김영국 씨, 김동철 의원이 모두 나와야 한다. 업(業)은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다고 했다. 종교와 정치가 휘말려버린 지금, 서로 가릴 게 아니라 만나서 사과도 하고 화해도 해야 한다.

이쯤에 와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누가 싸움 좋아하는 아수라인지, 누가 이해에 집착해 평상심을 잃고 있는지, 누가 자비로운 보살인지, 속가 불자들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자들이 스님들의 대화를 주시하는 이유는 너의 부처와 나의 부처가 같기 때문이다. 불자의 죄를 대신 참회해야 할 스님들이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아니면 산문(山門)을 닫아야 한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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