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일부 코치와 선수의 담합 및 승부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주 대한체육회는 “대표 선발전 마지막 3000m 경기 직전에 일부 코치와 선수들이 모여 모두가 대표로 선발될 수 있게 협조하고, 시즌 국제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딸 수 있도록 협의했다”고 발표했다. 불과 두 달 전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통해 행복감과 자부심을 한껏 느꼈던 국민으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겨울스포츠의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에서 드러난 이 사건은 밴쿠버 올림픽의 놀라운 성과와 대비되면서 한국 스포츠의 명과 암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스포츠계
한국 엘리트 스포츠는 1964년 태릉선수촌 설립을 시발점으로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아 이른바 압축성장을 했다. 금메달 수 기준으로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36위에 불과했던 한국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10위를 달성한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제외하고 꾸준히 10위권에 들고 있다.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분야 전반이 도약했고, 1990년대 들어 국내 스타 선수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신세대 스타 선수들이 수영, 빙상, 피겨스케이트와 같이 서구 선진국이 주도하는 종목에서 세계 최고의 기량으로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한국은 가지고 있는 경제력이나 인구 규모 이상의 탁월한 성과를 내며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스포츠 강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스포츠가 국민에게 행복감과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국가 위상 제고와 국가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어떤 분야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스포츠계 내부는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파벌, 구타, 성폭력, 심판매수, 승부조작, 공금횡령, 약물복용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대한체육회가 과거와 달리 스포츠계의 ‘구악’에 쉬쉬하지 않고 단호히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사건에 대해 사후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는 한국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뿌리 깊고 총체적이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 스포츠 시스템의 후진성은 결과를 중시하는 압축성장의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스포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나 즐기고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를 망각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이 추구한 것은 고대 그리스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인 ‘신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룬 인간’을 스포츠를 통해 함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기한계에 도전하게 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건전하고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였다. 따라서 공정성과 순수성이 결여된 스포츠는 그 자체로 존재가치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번 쇼트트랙 사건은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는 성적지상주의에 빠진 한국 스포츠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후진성 걷어내고 체질 개선해야
지난 반세기를 지탱해 온 한국 스포츠 시스템은 이제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동안 스포츠계는 혁신의 사각지대로서 한국 사회 전체가 경험한 치열한 진화 과정에서 열외로 남아 있었다. 이제 한국 스포츠는 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총체적이고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체질 개선을 통해 지속가능한 선진형 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2020년에는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 아니라 스포츠 선진국으로 인정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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