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승렬]달라이 라마, 美-中 새 구도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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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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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8일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와 위안화 절상 압력으로 양국 관계가 민감해진 시점에 이루어진 면담 이후의 미중 관계 향방이 관심을 끈다. 사실 달라이 라마 면담은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 방중에 앞서 10월로 잡혔다가 연기됐으며, 조지 부시 대통령 이후의 미국 대통령이 예외 없이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는 점에서 새로울 것은 없다. 비공개인 데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도 대체로 달라이라마의 ‘비폭력 대화 노선에 대한 인정’ 정도로 문제될 내용이 없다.

달라이 라마의 워싱턴행이 흥미로운 것은 미중 관계의 변조(變調) 신호인가 하는 점이다. 작년 11월만 하더라도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동아시아 순방길에서 한국과 일본에는 하루씩 묵었지만 중국에는 3박 4일을 할당했다. 얼마나 중국에 공을 들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이후 기자회견 석상에서의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은 인상적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역사상 미중 관계가 지금처럼 중요했던 적은 없다”면서 미중 관계에 대해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동반자 관계’임을 강조했다. 무엇이 3개월 만에 미중 밀월을 깨고 서로 겁주는 사이로 만들었을까.

미중 갈등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의 철학의 차이와 전략적 마찰이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인정하고 미국이 세계 살림을 꾸리는 데 협조하는 친구 역할을 희망한다. 중국은 미국도 인정하는 국력을 바탕으로 그동안 미국 천하였던 세계를 공동 관리하려 한다. 세계 금융위기 대처 과정에서도 미중 관계는 오월동주(吳越同舟) 격이었다. 중국은 미국 국채를 사주면서 국제 금융질서에서 자국의 지분 확대를 탐했고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자국 외환자산 가치 보전을 위한 고육지책을 가지고 너무 생색을 낸다고 봤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북과 대북 경제지원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력 수단을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최근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 정책이 강경으로 선회했다는 점도 미중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강보험 개혁 등 미국 국내 정치에 있어서의 무력감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대한 전면적 공세, 일본 자동차 리콜 사태에 대한 강경 자세, 중국의 위안화 저평가 문제에 대한 공세와 달라이 라마 면담의 배경일 수 있다. 1월 말 미국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을 뽑는 보궐선거에서 패배를 맛본 오바마 정부로서는 금년 11월에 있을 중간선거를 위해서도 대외 정책을 활용하고 싶을 것이다.

중국은 더더욱 미국 없이는 곤란하다. 미국은 중국 최대의 수출시장이며 기술 도입원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협력 없이 자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중국 위안화의 기축 통화화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중국은 대국이지만 산적한 국내 문제를 동시에 갖고 있는 개발도상국이기도 하다. 단지 협력과 경쟁으로 요약되는 양국 관계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워싱턴 방문 기간에도 미국 핵 항모 니미츠호의 홍콩 기항을 허용한 것이 중국이다.

미중 간의 치열한 기 싸움을 보면서 정말 걱정되는 점은 한반도 정세와 한국경제에 미칠 파급효과이다. 양국의 전략적 접근으로 인해 북한 핵문제는 현상 유지의 늪에 빠져버릴 수 있다. 또 중국에서 한국기업이 생산하여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이 미국의 대중 무역규제조치에 애꿎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면밀한 관찰과 대책마련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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