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여울]겨울올림픽이 숨겨놓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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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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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성큼 다가왔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1인 미디어가 되어 스포츠에 대해 전문가 못지않게 해설을 하거나 칼럼을 쓰는 상황에서 메달에는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최선을 다하는 선수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자는 말은 아주 평범해서 주목을 못 받을지 모른다. 분명한 점은 선수에게 거는 기대 못지않게 국민의, 팬의 수준 또한 높아졌기에 이번 겨울올림픽은 어느 때보다 열광적인 축제 분위기를 예고한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승부의 세계로 초대

김연아 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그녀는 피겨의 역사만 다시 쓴 것이 아니다. 스포츠를 제대로 관람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암기하거나 응원하고 싶은 선수를 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관중 개개인의 ‘감성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는 그녀를 통해 배웠다. 말하자면 그녀는 ‘하는 스포츠’뿐 아니라 ‘보는 스포츠’를 둘러싼 감각의 역사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매년 성황리에 열리는 볼쇼이 아이스쇼를 볼 때만 해도 우리는 피겨스케이팅을 단지 ‘얼음 위의 서커스’ 정도로만 인식하지 않았던가. 김연아 선수의 눈부신 성장 덕분에 우리는 유사 이래 피겨스케이팅 전문용어를 가장 많이 아는 세대가 될 수 있었다. 그녀를 통해 피겨스케이팅이 뮤지컬이나 오페라 못지않은 감동적인 종합예술임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스파이럴을 선보이는 순간, 우리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성의 촉수를 지닌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우승 이외에 김연아 선수가 우리 국민에게 준 귀한 선물이다.

피겨스케이팅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경기도 마찬가지다. 메달 획득 가능성이 큰 자국 선수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방송사의 관행, 해설인지 응원인지 알 수 없는 아마추어적 경기 해설, 관전 포인트를 우승후보 2, 3명의 경기 모습에만 한정하는 관행,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라이벌은 무조건 원수로 규정하여 악플을 위한 악플을 서슴지 않는 시청자. 이 모두가 겨울올림픽을 진정한 축제로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된다. 언론 역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대결 구도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쇼트트랙의 메달 개수에만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스포츠의 고귀한 의미를, 다시 말해 인간이 흘리는 땀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느끼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너무 걱정만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는 ‘국가대표’라는 영화를 통해, ‘무한도전’의 ‘봅슬레이편’을 통해,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통해 스포츠에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 역시 얼마나 많은 감동을 주는지 톡톡히 배웠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겨울올림픽을 신명나게 즐길 수 있는 감성의 예비훈련 아니었을까.

땀흘린 이들의 ‘갈라쇼’에 갈채를

피겨스케이팅으로 다시 얘기를 돌려보자. 매혹적인 볼거리의 하나는 갈라쇼다. 메달을 놓고, 성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순간에서 벗어나 관객과 선수가 하나가 되어 펼치는 축제가 갈라쇼이다. 그 순간만은 아사다 마오에 대한 샐쭉한 심정도, 김연아 선수에 대한 조마조마한 마음도 사라진다.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얼음 위의 예술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즐기는 심정이 된다.

이번 겨울올림픽에서는 스키와 빙상 바이애슬론 루지 봅슬레이 아이스하키 컬링 등 7개 종목에서 86개의 금메달을 놓고 각국 선수가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 이 모든, 치열한 경쟁 너머 우리 마음속에서 ‘상상의 갈라쇼’를 펼쳐보면 어떨까. 국경도 종목도 기록도 메달도 상관없이 모든 선수와 팬이 함께 모이는 순간을 떠올리자. 그러고 보니 진부하더라도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성적만이 아니라 선수들이 땀 흘리는 모습 자체에 박수를 보내자고 말이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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