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도자 잘못 만나 지옥에 갇힌 2400만 북한 주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올해 9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조화는 불가능하다”는 지침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북한의 화폐액면절하(리디노미네이션)도 경제노선을 변경하라는 그의 지시에 따른 것이 확실하다. 이번 조치는 소규모 시장(장마당) 같은 시장경제 요소를 약화시키고 계획경제와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옛 공산권 국가들은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을 뼈저리게 겪고 잇따라 시장경제로 전환했다. 과거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재앙을 겪은 중국은 1978년부터 시장경제 요소를 대거 도입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경제대국(大國)으로 성장했다. 덩샤오핑은 한국 박정희 정부의 압축적 경제발전모델에 주목해 ‘능력 있는 사람부터 부자가 되라’는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했다. 베트남 러시아 동유럽도 계획경제의 환상을 버리고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해 국부를 키우고 주민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있다.

반면 김정일 집단은 이제 겨우 싹이 움트려는 시장경제 요소를 뿌리 뽑고 계획경제를 강화하며 시대를 역주행하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세계 최빈국 수준에서 살아가는 북한 주민의 궁핍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북한 정권이 주민 생활 향상이나 경제 발전은 안중에도 없고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을 쏟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주민이 굶어죽든 말든 북한은 ‘선군(先軍)정치’를 내세워 핵과 미사일 등 군사력 증강과 무기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재래식 무기는 물론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자까지 수출하면서 한반도는 물론 세계평화를 위협한다.

광복 직후에는 북한 경제력이 남한보다 월등히 앞섰다. 1960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280달러로 83달러에 그친 남한의 3배를 넘었다. 그러나 남한이 수출을 통한 공업화와 빈곤 퇴치에 박차를 가한 반면 김일성·김정일 집단은 적화통일 야욕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군수산업에 쏟아 부으면서 경제력은 완전히 역전됐다. 지난해 북한의 국민총소득은 남한의 38분의 1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8분의 1에 불과하다.

북한 정권은 덩샤오핑을 필두로 중국 지도층이 보여준 실용주의 정신도 없고, 베트남 지도자 호찌민이 남긴 도덕성도 없는 ‘폭압적이고 이기적인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 기본적 삶조차 어려울 정도로 고통 받는 2400만 북한 주민이 딱하다. 북한 정권의 사악함에 눈 감고 궤변으로 감싸는 우리 사회 일각의 수구(守舊) 좌파세력의 죄악도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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