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맑은 윗물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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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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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도 서영찬, 그림 제공 포털아트
장생도 서영찬,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언젠가 후배 소설가 하나가 국적 포기 소송을 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에 적잖은 사람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정치인과 기업인 사이에 천문학적인 비자금이 오가고 사회 지도층 인사가 부정과 부패로 검찰 수사를 받거나 감옥으로 가고 오리발로 일관하던 고위공무원의 비리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일이 잇달아 터지던 무렵이었습니다. 후배 소설가는 윗물이 모두 썩어 아랫물은 지은 죄도 없이 오장육부가 다 썩어 문드러진다고 개탄하며 술을 마셨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을 상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훌륭한 일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도덕경’의 핵심입니다. 물은 자신의 형상을 고집하지 않고 주변의 모든 형상을 감싸 안아 변화무쌍하고 무한한 포용력을 지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역류하는 일이 없고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섬기는 일을 근본 덕으로 삼습니다. 섬김의 미덕으로 물만 한 게 없으니 군주의 도가 되고 지도층의 덕이 됩니다. 그래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상징적인 경구가 탄생했습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생장하게 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낮은 곳으로만 흐릅니다. 물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 모든 생명이 사라질 것입니다. 물이 곧 생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몸의 70%가 물이라는 건 우리 몸이 곧 물임을 입증하는 수치입니다. 물인 인간, 인간인 물, 그 점을 제대로 인식하면 상선약수는 완성됩니다.

물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생명에 이바지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물길을 끊고 물을 오염되게 만들고 물이 고갈되게 만드는 데 앞장섬으로써 인류의 생명을 스스로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21세기, 물의 오염과 고갈을 해소하지 않는 한 인류의 앞날은 암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물의 마음과 물의 자세를 회복하지 않는 한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윗물은 도덕적 해이와 부패의 상징이 된 지 오래입니다. 도덕적 책무를 삶의 바탕으로 삼아야 할 공직자가 사리사욕으로 스스로 오염되고 타락하니 상수원을 더럽히는 일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상수원이 더러워지면 세상 모든 물이 외면당하고 불신의 대상이 됩니다. 스스로 정화되지 않으면 자신도 오염된 물을 먹고 부패의 길을 가야 합니다. 탁류가 된 세상을 어떻게 정화해야 할까요.

맑은 윗물이 풍부한 세상이 그립습니다. 윗물이 잘 보존돼 맑은 물이 풍부한 나라가 부럽습니다. 스스로 맑은 윗물임을 자처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 스스로 맑은 윗물이 되고자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돼야겠습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도덕의 근원입니다. 그것의 오염은 생명의 위기를 반영하고 정신의 타락을 증명합니다. 맑은 윗물이 왜 소중한지 근본 이치를 이해하고 깊고 깊은 자정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생명 세상, 물에서 시작해 물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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