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적 自己否定의 극치, 이회창-문국현 야합

  • 입력 2008년 5월 23일 22시 59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정통보수를 내걸고 17대 대선에 뛰어들어 15.1%를 득표했다. 이를 자산으로 정당을 만들어 4·9총선에서 18석을 얻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창조적 진보’를 내걸고 대선에서 5.8%, 총선에선 3석을 얻었다. 정체성과 지지층으로 보면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 정당 간 정책연대 형식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공동 구성하겠다며 손을 잡았다. 시대의 정치 코미디이다.

두 사람은 “대운하 저지, 검역주권과 국민의 건강권 확보가 전제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내세운 정책은 구실일 뿐, 실은 교섭단체를 구성해 떡고물을 챙기겠다는 욕심이 앞섰음을 숨길 수 없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정체성을 내팽개치고 무작정 ‘합방’을 하겠다는 것이니 이보다 더한 자기부정이 또 있을까.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는 소수당의 정치적 한계와 설움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국민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더구나 정당은 같은 정치적 노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당원이나 지지자들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연대하겠다는 것은 밀실 야합이자 정치적 배신이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원칙을 중시해 왔다. 이 총재는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새 정권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여는 철학과 원칙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고, 문 대표는 작년 11월 통합신당과 민주당 합당에 대해 “졸속과 무원칙의 극치” “정체성 없는 과거식 선거공학”이라고 비난했다. 정치인의 겉과 속은 다르다고들 하지만 어제의 말과 오늘의 행동이 이렇듯 다를 수가 있는가.

이 총재는 ‘좌파정권 종식’을 정치 재개의 명분으로, 문 대표는 ‘깨끗한 정치’를 정치 참여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두 사람 모두 결과적으로 이런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치를 포기하는 것이 옳은 처신일지도 모른다. 정치의 단맛에 취해 점점 때 묻은 정치인을 닮아가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이 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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