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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윤재]‘정확성이 생명’ 번역은 공학이다

입력 2008-03-29 02:59업데이트 2009-09-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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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버나드 쇼가 쓴웃음을 지어야 할 일이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의 묘비명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번역돼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쇼는 전혀 이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 비문의 번역은 전혀 그답지 않다. 그는 실제로 우물쭈물한 사람도 아니었다.

묘비명의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번역하면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 머물 만큼 머물면 이런 일(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이다.

비문이 오역된 것은 영어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다. around는 전치사적 부사(prepositional adverb)로 다음에 the tomb이 감추어져 있다.

또 하나의 오역 사례를 보자.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캐럴’은 유명한 작품이다. A출판사의 번역본을 보면 ‘내가 했던 장사거래들은 내 진짜 사업이라는 넓은 바다에 있는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았단 말일세!’라고 돼 있다. B출판사의 것은 ‘상업상의 거래 같은 것은 넓고 넓은 대양과 같이 많은 해야 할 일 가운데 한 방울 물에 불과했던 거야!’라고 돼 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기가 어렵다.

원문은 ‘The dealings of my trade were but a drop of water in the comprehensive ocean of my business!’이다. 올바로 번역하면 ‘내가 했어야 할 자선사업의 규모는 광활한 바다만 하였는데 내가 번 것 중 베푼 것은 바닷물 한 방울에 불과했어’이다. The dealings of my trade에서 deal이 ‘나누어주다’란 의미로 사용됐는데 ‘거래하다’란 의미로 잘못 보았기 때문에 오역이 생긴 것이다.

번역이란 원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의 무게와 부피를 정확히 헤아리고, 그 의미를 담고 있는 포장의 모양까지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번역은 공학(engineering)이다. 잘못 설계됐거나 잘못 시공된 교량은 붕괴된다. 잘못 번역된 글은 길을 잘못 가르쳐 주는 것과 같다. 훌륭한 번역은 원문 언어(source language)와 번역 대상이 되는 언어(target language) 간의 조화다. 그렇게 하려면 해당 2개 언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문화의 중심에 번역이 있다. 번역은 시공을 초월한 문화 계승의 매개다. 국민의 교양과 정신을 살찌울 지식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입되는 오역 없는 정확한 번역은 정교한 문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윤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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