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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10월 1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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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나카소네 전 총리는 닮은 점이 많다. 모두 ‘작은 정부’ 노선을 적극 추진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국유 철도의 민영화를, 고이즈미 총리는 도로공단에 이어 우정사업의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두 사람은 미일관계를 굳게 지키는 것을 외교정책의 제1목표로 삼았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밀하다. 또 두 사람은 총리 재임 기간이 짧은 일본에서는 이례적으로 장기 집권을 실현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내년까지 임기를 모두 채우면 나카소네 전 총리와 재임 기간이 비슷해진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외교가 자신 있는 분야였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기본적으로 국내 정치에 강하다.
나카소네 전 총리에게 미일관계 안정이란, 일본을 위해 미국을 이용하는 것을 뜻했으며 미국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 한국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관계도 중시했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미국과의 교섭 재료로 쓴 일도 적지 않다.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으나 중국이 반발하자 참배를 그만뒀다.
고이즈미 총리는 다르다. 미일관계를 중시하는 점에서는 나카소네 전 총리와 같지만 미일관계의 안정을 일본의 외교정책에 이용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없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미일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도 교묘하게 진행했으나, 고이즈미 총리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는 공백 상태나 다름없다. 중국 한국과는 심각한 긴장이 계속되고 있으며 아세안 국가와의 친근감도 현저히 약해졌다.
고이즈미 외교의 동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북한에 대한 정책이 아닐까. 그가 평양의 초청을 받아 북한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한반도 문제에 관해 일본이 주도권을 쥐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가 일본 안팎에 일었다. 그러나 기대는 곧바로 깨졌다. 방북이 미국과의 협의나 중국 한국과의 조정을 거치지 않은 채 이뤄진 데다 북-일 정상화를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긴장 완화로 연결하려는 구상도 없었다. 납북 피해자의 가족으로부터 심각한 비판을 받게 되자 수교 노력 자체가 헛바퀴를 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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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고이즈미 총리는 미일관계를 중시해 온 것일까. 무엇보다 국내 정치를 위해서였다. 일본 정치는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비호 아래 놓여 있기에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 이후 미국과 안정된 관계를 가진 총리는 여당은 물론 야당에 대해서도 압도적 우위를 지켰다. 미국에 끈끈한 인맥을 가진 총리에게 누구도 대들 수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 여러 국가의 국제관계가 크게 바뀌려는 이때 아시아 최대의 경제대국인 일본의 지도자는 국내 정치만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 오늘날 일본 정치의 불행이 있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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