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신드바드 對인어공주’ 이라크戰딜레마

  • 입력 2005년 10월 12일 03시 10분


페르시아 만에서 미국 해군의 미사일 순양함 초신함(‘초신’은 함경남도 장진·長津의 일본식 표기. 6·25전쟁의 장진호 전투를 기념해 명명됐다)에 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오전 5시에 일어나 갑판을 어슬렁거렸다. 미 해군과 아랍인들의 정치 문화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함께 묶여 있었지만 이라크는 기본적으로 다민족 사회다. 오늘날 이라크인들은 독재정권의 강압 없이도 쿠르드족, 시아파, 수니파가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협약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상 모든 아랍국가가 독재의 강권에 인위적으로 묶인 종교와 민족의 혼합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라크가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다른 아랍국가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민주화의 희망도 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실패한다면 다른 곳에서도 불가능하며 아랍세계에서 독재와 군주제가 계속될 것이다.

초신함에 오르면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하나는 미 해군 병사들의 다양성이다. 흑인, 백인, 히스패닉, 기독교인, 유대인, 무신론자, 이슬람교인이 각자의 자유 의지에 따라 함께 일한다. 아랍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이라크 해군은 남성뿐이며 대부분 시아파다. 그들에게 백인은 외계인이나 마찬가지다.

초신함에서 아랍어 통역을 담당하는 모로코계 미국인 무스타파 안살 씨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 승선했을 때 우리 팀에는 히스패닉 1명, 흑인 1명, 백인 1명, 아마 여성도 1명 있었을 겁니다. 저를 본 이라크 해안경비대원들이 ‘당신도 미군이오?’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여러 인종이 공존하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해안경비대의 한 간부도 “미국에 그렇게 다양한 종교, 인종집단이 공존한다는 사실, 그러면서도 세계 최고가 됐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하나는 여성 장교가 많다는 점이다. 함정 내 방송을 통해 명령을 하달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종일 들을 수 있다. 이 소리를 듣고 해안의 어부들은 ‘이 함정에는 여성들만 타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초신함의 경비선, 순찰선에는 여성 정장(艇長)과 부정장도 있다. 여성 장교 레냐 에르난데스 씨는 “여성이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호기심 많은 어부들이 우리에게 친근감을 보이며 더 많은 얘기를 털어놓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페르시아어 통역을 담당하는 이란계 미국인 여성 나가 하이즐립 씨는 반대의 경험이 있다. “순찰 중에 제가 이란인들을 호출해도 저랑은 말하려 들지 않습니다. ‘남자와 상대하고 싶다’는 뜻이죠. 이란 어부들은 ‘왜 저 여자가 미군이지’라고 말해 놀라곤 합니다.”

이라크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다면서도 미국은 이 지역의 독재적, 부족 중심적, 남성 지배적 문화에 제대로 도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두 가지 혁명을 동시에 진척시키고 있는 셈이다. ‘토머스 제퍼슨 대 사담 후세인’, ‘신드바드 대 인어공주’의 전쟁 말이다.

이를 통해 아랍세계가 이슬람식 파시즘과 독재정치에서 표류하는 것을 막는 것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부시 행정부의 가장 큰 죄악은 이런 전쟁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이 작업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우세한 바람을 타고 똑바로 항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정리=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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