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뉴욕타임스 12일자에는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인간과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실렸습니다. 침팬지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 인간이 침팬지들에게 학대당할 때 느끼는 고통을 지금 침팬지들도 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네덜란드의 한 동물원에 살고 있는 암컷 침팬지가 여러 차례 갓 낳은 새끼를 잃고 몇 주씩이나 다른 침팬지들을 멀리하며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이 침팬지는 동물원 관리인들이 다른 새끼 침팬지를 안겨주자 비로소 슬픔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또 수년간 아프리카 각지의 침팬지 집단들을 조사한 결과 상대방의 몸에서 해충을 잡아주는 몸단장에서도 어떤 집단은 잡은 해충을 팔뚝으로 눌러 죽이는 반면 다른 집단에서는 잎으로 눌러 죽이는 것을 알게 돼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는 99년 영장류 실험을 금지하는 법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정했습니다. 네덜란드도 올해 같은 법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68년 제작된 같은 제목의 영화를 새롭게 각색한 영화입니다. 그 뒤 줄거리가 이어지는 네편의 영화가 더 만들어졌으며 74년부터는 TV연속극과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혹성(惑星)’은 일본말이고 ‘행성(行星)’이 우리말이라는 점입니다. 혹성은 ‘별일지 모른다’는 애매한 말이고 ‘나그네 별’이라는 의미의 행성이 과학적으로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나중에 국내 TV에 방영될 때는 ‘행성탈출’로 바뀌었습니다. 30여년 뒤에 굳이 ‘혹성’이란 단어를 되살린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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