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내 딸의 초경/기쁨과 함께 근심이…

입력 2000-01-24 19:10수정 2009-09-23 07:09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의상 디자이너 황재복씨(40)는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의 ‘성인식’을 기다린다. 몇해전부터 딸이 초경(初經)을 하면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부턴 아예 딸의 가방에 생리대를 넣어놨다. 준비없이 맞았던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중 1 겨울방학 때 친구집에서 과외수업을 받는데 갑자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놀라고 부끄러웠는지…. 그땐 저의 어머니도 다른 엄마들처럼 그런 거 챙겨주실 여력이 없었거든요.”

딸의 초경을 지켜보는 40세 안팎의 엄마들은 딸만은 자신처럼 당혹스럽게 ‘사건’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또 딸이 ‘업보의 굴레’로 들어가는 것쯤으로 여기지 않도록 마음을 쓴다.

▼여성이 된다는 것▼

여성학자 조영미씨(단국대 강사)는 “남자는 첫 성관계를 통해 남성이 됐음을 느끼는 반면 여자는 초경으로 여성이 됐음을 실감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초경을 통해 ‘생산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 반드시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장모씨(36·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의 경우 1년 전 초경을 시작한 딸(13)에게 미리 알려준 ‘정보’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도 딸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여성의 문턱에서 소녀들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의 김현미연구원(문화인류학)은 “월경 중인 여성은 제사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 우리의 전통문화”라며 “피로 상징되는 월경은 불경스럽고 수치스러우며 감춰야할 것으로 여겨져 왔다”고 말한다.

남성과 다른 여성만의 생리적 특징은 쉽게 ‘동물적’문제로 개념화된다. ‘인간적’ 활동을 추구하는 여성에게 월경 임신 출산 등은 방해요소라는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엄마 ‘개인’은 변화했더라도 여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딸들은 여성이 되는 것을 여전히 불안하고 부담스럽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여성으로 다듬어진다▼

별명이 ‘말괄량이 삐삐’였던 정설양(15·서울 성북구 미아동)은 1년 전 초경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여자친구보단 남자친구가 많았고 늘 양반다리로만 앉았지만 이젠 좀체 다리를 벌리지 않는 것. 말뚝박기놀이도 안한다.

또 하나 달라진 건 남성과의 접촉을 피하게 된 것. 남동생이나 아빠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게 싫어 외출할 땐 곧잘 방문을 잠근다. 이런 변화엔 엄마의 걱정도 한몫했다.

“엄마가 어찌나 걱정을 하시는지, ‘이제 너도 여자니까 몸가짐도 여자다워야 한다’면서 몸조심을 강조하시죠.”

초경하는 딸에게 말로는 “축하한다”고 해도 엄마 역시 두려움이 많아진다. ‘지킬 것은 지켜야한다’는 CF문구처럼 귀가시간을 엄격히 단속하며 순결교육을 시작한다. 적극적이고 당당한 여성으로 성숙하기를 바라면서도 예쁘게 차려입고 나간 딸이 늦게까지 안들어올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어른되기 부담스러워요▼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977년 한국여성의 평균 초경나이는 15.5세였다. 20년 가까이이 지난 1996년 조사에선 13.2세. 지금의 엄마들이 10대였던 때에 비하면 초경연령이 2.3세나 앞당겨졌다.

신체적으로는 초경 1년여전부터 여성호르몬이 분비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메리 파이퍼가 저서‘내 딸이 여자가 될 때’에서 지적했듯이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성인기로의 ‘준비’를 하던 유년기가 짧아지고 있는 것.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첫 월경을 시작했던 이모양(15·서울 강북구 번동)은 갑작스런 성인 대접이 불편했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작은 일에도 ‘넌,어른이야’라고 하신다. 내가 생각할 때는 아직도 평범한 아이인데. 엄마의 말이 정말 듣기 싫다.”

그렇다고 그들이 ‘애들’로 취급받길 원하는 건 아니다. 어린애 취급엔 오히려 강하게 반발한다. 결국 아이면서도 어른이고, 어른이면서도 아이인 끊임없는 ‘자기부정’의 시기가 엄마들의 그 무렵보다 오래도록 지속된다. 그래서 10대의 딸을 둔 엄마들은 “얘가 내 속으로 낳은 딸이 맞나”하고 가슴을치면서 딸들과 ‘전쟁’을 시작하게 되고.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독자들의 초경 이야기▼

▽“초경이 있던 날 아버지가 백화점에 데리고 가셔서 옷을 사주셨어. 이제 숙녀가 됐으니 몸가짐 마음가짐 바르게 하라는 당부와 함께.”

아버지가 자신의 초경을 이렇게 축하했다는 친구의 얘기는 두고두고 내 뇌리속에 남아있었다. 딸애가 중학교 갈 무렵 드디어 여자가 됐다. 뭘 선물할까 하다가 딸애의 탄생석인 진주를 생각해 냈다. 동네 금은방에서 작은 진주를 사서 14k줄에 꿰어 목에 걸어 줬다. 아이는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김혜경)

▽내나이 열셋에 몸쓸 병에 걸린 줄 알았습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별의별 생각을 다했지요. 진지하게 조용히, 그리고 심각하게 말씀 드렸을 때 내 엉덩이를 두들기며 기뻐하셨던 어머니. 정말 기쁘기만 하셨겠습니까. 딸의 맘 가볍게 해주시려던 어머니의 그 맘을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 잊지 못합니다.(곽수아)

▽엄마는 45세에 3남4녀중 막내인 절 낳으셨어요. 배우지도 못하고 늘 자식과 남편 때문에 속앓이 하는 걸 지켜봤지만 엄마가 아닌 할머니처럼 느껴져 속깊은 대화는 못나눴어요. 이제 제가 애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가 인생의 선배로 힘도 되고 존경스러워요.(김환수)

※ 다음주엔 ‘10대 딸애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실립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따님들’, 사춘기 딸애와 ‘애증’관계에 있는 엄마들의 참여(E메일 kjk9@donga.com)를 기대합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