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찬순]왜 지금 파헤쳐야 하는가

  • 입력 2001년 12월 21일 17시 45분


온 나라가 ‘게이트’와 ‘돈 냄새’로 떠들썩하다. 부패공화국이라는 말이 와 닿는다. 권력주변은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윤리도, ‘동지적 의리’도 없는 것 같다. 서로가 물고늘어지는 ‘음모론’만 무성할 뿐이다.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등 문(gate·게이트)의 이름과 입구는 달라도 ‘음모론’을 걷어내면 한 곳으로 길이 통한다고들 한다. 그 곳에 바로 ‘몸통’이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아들들’의 연루 의혹설이 나도는 곳도 그 ‘몸통’주변이다.

파헤쳐 보았자 끊임없이 썩고 부패한 구석만 나오는데 더 칼을 대서 뭘 하겠느냐며 수술 대신 오히려 덮어두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는 체념론도 있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아도 레임덕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정권을 계속 흔들어서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느냐는 동정론도 들린다. 하기는 새해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이며 지구촌의 축제인 월드컵은 별 탈없이 끝낼 수 있을 것인가, 또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는 제대로 치러질 것인가….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떻게 하든 이 정권이 짊어지고 가야 할 일들이고 보니 하는 행동이 예뻐서가 아니라 일을 봐서 당분간 참자는 ‘유예론’도 나온다.

▼정치풍토 쇄신 위해 필요▼

그런데도 언론은 왜 자꾸 ‘게이트’를 꺼내고 부패의 실체와 ‘몸통’을 추적하는가.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덕이고 있는 와중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쳤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중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얼마 전 외국인 테러리스트에게 비공개 군사재판을 하게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지는 ‘전쟁과 재판’이라는 이례적인 장문의 사설을 통해 부시 대통령은 ‘헌법의 아버지들’이 만든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국운이 걸린 전시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게 뉴욕타임스지의 판단이었다.

권력이 자진해서 잘못을 시인하고 스스로를 단죄한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가능한 한 자신의 잘못을 덮고 숨기려는 것이 권력의 습성이다. 언론은 어떤가. 개미가 먹이를 찾듯 끈질기게 사실을 추적하고 끌어 모아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언론의 본분이다. 부정한 권력과는 끊임없는 대결을 할 수밖에 없다. 대중의 정서와 감정도 때에 따라서는 과감히 뛰어넘어 냉정한 비판에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사회와 나라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는 게 언론의 신념이다.

구태여 언론의 기본 정신과 본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지금의 ‘게이트’와 ‘몸통’은 그 진실과 실체를 덮으려야 덮을 수 없다. 우리의 정치풍토 쇄신을 위해서다. 노태우 정권은 전두환 정권을 청산하는 데, 김영삼 정권은 노태우 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데, 그리고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의 비리를 캐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는가. 그로 인한 민생의 피해는 또 어떠했던가.

다시는 그런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한 일이 드러나면 임기 중에 해결하고 물러나는 깨끗한 전통을 세워야 한다. 남의 손에 이끌려 법정에 서는 비굴한 모습은 누구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언론이 계속 ‘게이트’와 ‘몸통’의 규명을 촉구하는 것도 그냥 넘어가면 현 정권 역시 과거 정권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청산하고 영욕을 간직한 채 미련 없이 퇴장하는 정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게이트’ DJ임기중 해결을▼

더구나 우리의 현대사에 수많은 공과를 남긴 ‘3김 시대’도 이제 어쩔 수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현 정권은 그 3김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걷어가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 ‘게이트’와 ‘몸통’을 숨긴 채 어영부영 세월 가기만 기다리는 정권이라면 어떻게 그 같은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현 정부가 깨끗한 정부로 남게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성역 없이 사실을 밝히라는 지시도 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정말 한 점 의혹 없이 모든 것을 훌훌 턴다면 언론이 무엇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겠는가. 오히려 박수를 보낼 것이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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