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이 중심을 잃고 몹시 흔들리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난파할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신한국당 구 민주계 일부는 대선후보 교체론을 제기하고 이회창후보보다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인제지사가 독자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2일 『당의 결속을 방해하는데 대해 더이상 참지 않을 것이며 당의 울타리를 벗어나겠다는 사람은 붙잡지 않을 것이고 당으로서 필요하지도 않다』고 선언했는가 하면 이지사는 그날밤으로 『신한국당은 이대표 개인의 당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누가 누구보고 나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대응하였다.
만일 여당이 난파될 때 여권의 붕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정치 전체가 이합집산의 소용돌이에 말려들 것이며 그것은 정치의 안정을 깨고 국민의 불안심리를 자극하여 경제 사회적 혼란을 증폭시킬 것이다.
▼ 경선잡음과 후보교체론 ▼
지금은 여권지도자들이 감정을 식히고 냉정을 되찾아 분파주의를 지양하고 민주주의적인 원리원칙으로 사태 수습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물론 여권분열의 원인은 이회창대표의 미흡한 지도력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단호하면서도 동시에 유연한 친화력으로 반대파들을 포용하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점은 여당으로서는 사상 초유의 「자유경선」이었는데 그 결과를 쾌히 승복하지 않는 후진적 정치문화에 있다. 일곱명의 후보자들이 각 시도를 돌아다니면서 정견을 발표하고 마침내는 1만2천명의 대의원들이 모여 결선투표까지 벌여 뽑은 후보인데, 그리고 경선 후 모든 경쟁자들이 다같이 축배까지 들었는데, 이후보 아들 병역면제 문제로 인기가 떨어지자 후보교체론을 제기하고 이지사가 높은 인기도를 이유로 독자출마의 길을 택한다면 그것은 당인으로 규칙을 깨는 것이요, 정치인으로 대의명분을 저버리는 것이다.
인기란 하룻밤 사이에 바뀔 수 있는 것이며, 경선전에도 국민인기는 이지사가 이대표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었다. 병역시비가 그후 국회에서 거론되어 큰 이슈로 발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경선과정에서 제기되었던 것이다.
▼ 흔들리는 「민주정치 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대통령과 여당 스스로 민주주의적 성과로 자랑한 사상 초유의 경선결과를 여당 스스로 뒤집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본룰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아마도 여권사람들한테는 「자유경선」이란 있어본 일이 없는 생소한 개념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승복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부도덕한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여당은 일단 후보를 정하면 누구와 싸워도 반드시 이긴다는 「상승(常勝)신화」에 홀려 이후보의 인기하락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는 더딘 걸음이지만 발전하고 있다. 여당이 「제왕적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때는 갔고, 이른바 「자유경선」을 실시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여당은 절대로 질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자랑스럽게 이룩한 「자유경선」의 가치를 파기하는 마음가짐이라면 대통령선거에서의 승패인들 흔쾌히 승복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20세기 전반의 영국의 대정치가 사이먼경의 한마디. 『영국의 의회민주주의는 서로 입장이 다른 정파에 속하는 지도자들이 컨스티튜션을 파괴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반대파에 승리를 알려주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견지하는 동안에만 원활하게 운영된다』
여기서 컨스티튜션이란 게임의 규칙, 그리고 게임운용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뜻한다.
박권상<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