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헌혈 급감에 혈액 보유량 3일치도 안남을 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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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확진자 발생 이후 헌혈 기피
개인헌혈자 작년보다 2만명 줄어… 단체헌혈도 2주만에 144건 취소
“청결 안심… 생명 살리기 동참을”

“이러다가 1분 1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들에게 제때 혈액을 공급하지 못할까 봐 정말 걱정입니다.”

3일 서울 강남구 헌혈의집 강남2센터는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주변에 회사가 많아 평소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이 꽤 몰렸지만, 최근엔 눈에 띄게 사람이 줄었다. 심지어 이날 점심시간쯤엔 헌혈 침대 7개가 1시간 가까이 공석이었다.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인근 헌혈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시간, 장비를 점검하고 주변 청소를 하는 직원 외에 헌혈자는 보이지 않았다. 종로구 한 센터의 헌혈 침대 역시 한산했다. 센터 관계자는 “하루 평균 40명 안팎이 찾았는데 오늘은 오전 내내 2명뿐이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탓에 헌혈자가 최소 30% 이상 줄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여파가 이어지면서 일선 병원 등에 필수적인 혈액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개인 헌혈자는 물론 군대, 기업 등의 ‘단체 헌혈’도 줄줄이 취소되면서 최소한의 혈액 보유량도 유지하지 못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달 20일부터 헌혈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달 2일까지 개인 헌혈자는 5만718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만7979명보다 2만 명 이상 감소했다.

군대나 기업, 공공기관에서 하는 단체 헌혈은 더 심각하다. 첫 확진자 발견 뒤 2일까지 무려 144개 단체가 헌혈 취소를 알려왔다. 단체별로는 군부대 69건, 일반 단체 50건, 공공기관 및 단체 23건, 대학·고등학교 각 1건 등이다. 이런 분위기는 첫 확진자 발견 뒤로 점점 심해지고 있어 ‘헌혈 취소 도미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혈액 보유량은 점점 줄고 있다.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3일 현재 혈액 보유량은 각각 △O형 3.7일분 △A형 3.2일분 △B형 4.5일분 △AB형 3.5일분을 유지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혈액은 5일분을 확보하고 있어야 안정적이라고 보며, 3일분 아래로 떨어지면 공급 위기에 처한다. 현재 혈액 보유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일분 이상 적다. 혈액관리본부는 13일 기점으로 혈액 보유량이 3일분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의 영향으로 헌혈 감소도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명이 모이는 단체 활동 자체를 꺼리는 데다, 헌혈을 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 선입견이 작용해 ‘현혈 기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헌혈은 날씨와 전염병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안 그래도 헌혈 비수기인 겨울철인데, 신종 코로나까지 겹치며 헌혈의집이나 병원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혈액관리본부는 헌혈 인구가 갑작스레 줄어들며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혈액관리본부 측은 “메르스 위기 때도 정치권과 정부, 국민이 헌혈에 동참하면서 분위기를 전환시켜 위기를 넘겼다”며 “2회 이상 소독을 실시하고 헌혈자 체온을 체크하는 등 청결 유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만전을 기울이고 있으니, 사회공동체의 생명을 살리는 헌혈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우한 폐렴#코로나 바이러스#헌혈 취소#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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