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스팸메일의 경제학

  • 입력 2002년 12월 29일 17시 57분


일주일간의 해외출장을 마치고 최근 돌아온 김정식씨는 e메일 박스를 열어보고 한숨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도착한 메일이 정확히 387통. 이 중 평소 알던 사람에게서 온 메일은 채 10%도 되지 않았다. 스팸메일을 골라서 지우는 데 반나절을 꼬박 보내야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스팸메일의 공급구조〓기자는 스팸메일 발송을 도와준다는 ‘스팸메일’을 받고 직접 연락해 보았다. 전화를 받은 A씨는 “e메일 추출기 및 발송기 값만 해도 정품은 35만원이지만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고 시장상황을 전하면서 10만원만 주면 e메일 주소 4000만개에 보너스로 e메일 발송기를 끼워줄 수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년 동안 e메일 주소 4억 개를 모았는데, 중복 e메일을 제거하고 나이별 업종별로 세분화한 데이터베이스를 4000만개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A씨가 이처럼 짧은 시기에 e메일 주소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e메일 추출기 소프트웨어가 있었기 때문.

시중에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추출기 등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는데 검색어만 입력해주면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상을 서핑하면서 시간당 2만∼3만개의 e메일 주소를 뽑아낼 수 있다.

e메일 DB의 주요한 소비자는 소호 등 영세한 개인사업자와 성인사이트 운영자들이 대부분. PC 한대만 있으면 e메일 발송기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하루에 30만통까지 대량 발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e메일 한 통당 0.3원을 받고 대신 발송해주는 신종 서비스도 보편화되고 있다. 이처럼 스팸메일이 홍수를 이루면서 국내 스팸메일이 외국에까지 무더기로 발송돼 한국은 ‘스팸메일의 온상’으로 낙인찍힌 상태다.

올 초까지만 해도 사업자가 통상 70만통을 발송하면 5만통가량 열어봤으나 최근에는 안티스팸 기술의 발달로 70만통 중 1000통 정도만 소비자들이 열어보는 것으로 추산된다.

▽스팸메일의 경제학〓스팸메일은 마케팅 비용이 워낙 싸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 A씨에게 DB를 살 경우 e메일 주소 한 개당 비용은 0.025원에 불과하다. 1년 전만 해도 주소 한 개 당 비용이 10원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격파괴’가 일어난 것.

문제는 스팸메일이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망 유지비용, 스팸메일을 막기 위한 시스템 비용, 수신인의 정신적인 피해 등 손실이 증가한다는 점. 즉 스팸메일의 편익(광고효과)은 발송업체가 누리지만, 비용(불편)은 웹업체와 수신인이 부담하는 ‘비용-편익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최대의 웹메일 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대표 이재웅)은 4월부터 1000통 이상 발송되는 상업용 메일에 대해서는 1통에 10원씩 받는 ‘온라인 우표제’를 도입했다. 대신 메일 끝에 ‘정보성’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많은 수신자가 ‘정보성’이라고 회신하면 우표값을 돌려준다. 수신인에게 도움이 되는 메일 이외에는 발송업체가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

이 제도의 성패는 다음의 회원수가 늘어나느냐 줄어드느냐에 달렸다. 다음은 탈퇴한 회원이 거의 없어 일단 성공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스팸메일도 정보이므로 온라인 우표제가 장기적으로 회원들의 이탈을 불러올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스팸메일과의 전쟁에서 살아 남으려면〓스팸차단 솔루션 개발업체인 디프소프트의 이승찬 사장은 “무엇보다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e메일 주소를 절대로 남겨서는 안된다”며 “일단 e메일 주소가 스팸메일에 노출됐으면 e메일 주소를 바꾸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근 나와 있는 스팸차단솔루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 이 같은 소프트웨어는 회사 e메일 서버에 설치하는 서버용 스팸메일 차단솔루션과 개인이 본인 PC에 설치하는 필터링 소프트 웨어로 나눌 수 있다.

최근 정통부가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네버스팸’(www.neverspam.or.kr)을 다운받아 홈페이지에 설치하면 향후 e메일 추출을 막을 수 있으나 이미 한번 스팸에 노출됐을 때에는 소용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관련법의 국회 통과로 내년 1월 19일부터는 e메일 추출 거부의사를 밝힌 홈페이지에서 무작위 추출하거나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추출된 e메일 DB를 판매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고, 미성년자 e메일로 음란물을 보냈을 경우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법망이 강화됐다는 점.

불법 스팸메일 신고 및 차단방법 안내는 www.spamcop.or.kr에 접속하거나 02-1336(서울지역은 앞의 국번 없이)으로 전화하면 된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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