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박에스더(김점동), 한국 최초 여성과학자"

  • 입력 2002년 5월 28일 20시 08분


한국의 첫 여성과학자인 김점동의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 졸업식 사진(1900년)
한국의 첫 여성과학자인 김점동의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 졸업식 사진(1900년)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교수(사학과)와 김근배 전북대 교수(과학학과)는 24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국 역사 속의 여성과학자 발굴’이라는 세미나에서 “박 에스더라고 불린 한국인 첫 여의사 김점동(金點童·1877∼1910)이 한국의 첫 여성과학자”라고 발표했다.

김점동은 세계적인 여성 과학자인 퀴리 부인과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다. 퀴리 부인보다 10년 늦은 1877년 태어나, 1896년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했다. 1900년 한국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인으로는 서재필에 이어 두 번째 의사가 됐다. 그녀는 유학직전 한국인 박여선과 결혼하면서 ‘박 에스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녀가 의사가 된 뒤에는 뉴욕에서 힘든 농장일을 하며 그녀의 학비를 대다 그만 폐결핵으로 사망한 남편의 ‘외조’가 큰 도움이 됐다. 김점동은 의사가 된 뒤 바로 귀국해 서울 동대문의 구제병원 등에서 열심히 환자를 진료하다, 1910년 남편과 같은 폐결핵으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영향으로 의사를 희망한 여성들이 늘어났고, 마침내 1928년 경성여자의학강습소(현 고려대 의대)가 세워졌다.

한국 과학계에서 첫 여성 박사(Ph.D)는 누구일까.

김점동의 유학 초기 시절 가족 사진(1895년). 왼쪽부터 김점동, 그녀의 공부를 지원해준 선교사 로제타 홀, 김점동의 남편 박여선.

김근배 교수는 “1929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공중보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송복신(宋福信)이 첫 여성 박사”라고 밝혔다.

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제 식민지 시대가 되면서 여성의 해외유학이 늘어났고, 모두 17명의 여성이 국내외 대학에서 과학기술을 전공했다. 국내 4명, 일본 2명, 미국 11명이었다. 전공으로는 의약학이 1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공학 4명, 농학이 1명이었다.

생물학 분야의 첫 여성 박사는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유한(李瑜漢) 여사로 추정됐다. 농학 분야에서는 1943년 일본 북해도제국대학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일본 구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삼순(金三純) 여사가 처음이었다. 김삼순 여사는 서울대와 서울여대 등에서 활발하게 연구하는 등 실질적인 최초의 여성 과학연구자였다.

해방직후 한국 의과대학의 수업 모습

이밖에 화학 분야에서는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모정자(牟貞子), 1961년 미국 콜롬비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장혜원(張惠媛), 물리학에서는 1960년대초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를 받은 조균행(趙均行) 여사 등이 선구자였다. 또 공학 분야에서는 1971년 서울대에서 화학공학 박사를 받은 박순자(朴順子) 여사가 첫 박사로 추정됐다. 이보다 앞서 우봉금(禹鳳金) 여사가 식민지시절에는 중앙시험소에서, 해방 후에는 중앙공업연구소에서 활동한 최초의 근대적 여성기술자였다. 김 교수는 “이 결과가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며 앞으로 연구를 계속하면 여러 분야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이웃인 중국은 13세기 유명한 방직 기술자였던 황도파(黃道婆), 1929년 의사가 된 임교치(林巧稚), 1940년대 재료과학자로 활동한 임난영(林蘭英) 등을, 일본은 1927년 박사 학위를 받은 야스이 고노(1880∼1971)를 최초의 여성 과학자로 꼽고 있다.

박성래 교수는 “한국인들이 서양의 퀴리 부인은 잘 알면서 김점동 등 우리 조상들에 대해서는 너무 몰라 안타깝다”며 “앞으로 역사속에 묻힌 한국 여성 과학자를 발굴하는 한편 아직도 남아 있는 여성과학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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