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기록 영어대신 우리말 쓰자』 서명운동 확산

입력 1998-11-24 19:04수정 2009-09-2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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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지역 병원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실험’이 실시되고 있다. 진료기록부를 한글로 자세히 쓰고 환자에게 증세를 친절히 설명해 주자는 ‘진료기록부 한글로 쓰기’서명 운동이 그것이다.

또 현재 입법 예고된 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실질적으로 환자의 진료기록부를 공개하는 등 환자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보건소 의사들이 주축이 돼 지난주부터 시작된 서명운동은 24일 현재 삼성서울병원과 영동세브란스병원 등 19개 병원에서 활발하게 서명이 진행되는 등 호응이 일고 있다. 또 청아치과 의사 5명과 광혜병원 의료진 4명 등 개업의들도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같은 운동은 현재 대부분의 병원 및 의원에서 의료법 규정을 무시하고 진료 조산 간호기록부를 영어 약자로만 기록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비롯된 것.

예를 들어 감기환자가 진료를 받으면서 증상에 대해 ‘어젯밤 열이 나고 배가 아팠다’고 할 때 의사들은 ‘fever & abdominal pain last night’라고 쓴다. 그나마 일부 의원에서는 이를 줄여 ‘f ap 1da(one day ago)’로 쓰는 경우도 있다. 3년전부터 한글로 진료기록부 양식을 작성해 활용중인 강남구 보건소의 황해룡(黃海龍)소장은 “의사들이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용어를 나열하는 것이 우리 의료계의 현실”이라며 “그러나 진료기록부를 한글로 기록한 뒤에는 환자들이 의사를 신뢰하게 돼 치료에도 성과를 거두게 됐다”고 말했다.

황소장은 또 단순히 headache(두통)로 쓰기보다 ‘오른쪽 머리가 쿡쿡 쑤심’ ‘배가 살살 아프다’ 등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치료에도 훨씬 유용하다고 덧붙였다.

의료법 개정안이 그동안 수사 및 재판을 위해 필요한 경우로만 한정됐던 진료기록부 열람을 환자들에게 가능토록 한 것도 환자들의 알권리 차원에서 진일보한 조치라는 것이 중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K씨는 “일부 종합병원에서는 치료 후 소송이 걸렸을 때에 대비해 진료기록부를 고치거나 새로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종구(金鍾九)상근대표는 “진료기록을 영어 약자로만 적는 것이나 진료기록부 열람을 거절하는 것은 권위의식의 발로이자 의료분쟁을 막기 위한 전근대적 조치”라고 지적했다.

〈김경달·이완배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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