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시대]<1>불안한 노후생활

  • 입력 2003년 4월 2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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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이 불행하다고요? 아닙니다. 한국사람이 더 어렵습니다.” 은행 예금금리가 연 4%대로 떨어지면서 ‘한국인 불행론’이 확산되고 있다. 명목금리는 일본(0.03%)보다 높지만 세금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다. 반면 일본은 플러스(+)다. 연 7∼8%대 이상의 금리에 익숙해 있던 한국인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금리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데 이자소득은 줄어들어 은퇴 후 노후생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를 맞아 노후생활을 편하게 지낼 정도의 목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또 이 자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굴릴 것인가를 시리즈를 통해 집중 소개한다.》

전직 공무원인 서모씨(66·서울 광진구 광장동)는 올 들어 가급적 점심을 먹지 않는다. 부부 둘이서 살아가는 그는 은행 정기예금에 2억원을 넣고 이자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금리가 4%대로 떨어지면서 세금을 제외한 한달 이자가 60만원을 조금 넘는다. 설상가상으로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마저 늘어나 밥을 굶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원금을 까먹을 수는 없었기에.

정부 산하의 한 문화단체는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배당펀드’에 가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기금에서 최소한 연 9%의 이자를 받아야 각종 문화사업을 할 수 있는데 4% 정기예금 금리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펼쳐지면서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20, 30대는 내집 마련을 위한 목돈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고 40, 50대는 은퇴 후 노후생활 자금 장만이 걱정이다. 60, 70대는 하루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할지가 고통스럽다. 이자로 사업을 하는 장학재단이나 보육원과 양로원 등도 씀씀이는 줄지 않는데 쓸 돈은 줄어들고 있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세금(이자소득세 16.5%)과 물가상승률(3월 중 2002년 같은 기간 대비 4.5%)을 감안한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은행의 평균 예금금리는 2월에 연 4.45%.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7년 12월(11.08%)에 비해 6.63%포인트나 떨어졌다. 일부 은행에서는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3.8%까지 떨어졌다.

국민은행 김홍룡 도곡지점장은 “10억원을 정기예금에 맡기면 한달 이자가 3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며 “연봉 5000만원인 사람은 현금자산을 20억원 정도 갖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상호저축은행(5.89%) 신용협동조합(5.55%) 상호금융(5.03%) 등은 약간 높은 이자를 주지만 이 금리도 넉넉하지는 않다.

3년짜리 회사채(5.4% 수준)와 신용카드채권(7% 이상)의 금리가 높기는 하나 원금마저 날릴지 몰라 불안하다. 0.1%포인트라도 더 받기 위해 머니마켓펀드(MMF)에 20조원 이상 몰렸다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과 신용카드 채권 문제가 터지면서 입었던 ‘악몽’을 떨칠 수가 없다.

▽부동산, 주식투자가 대안?〓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고모씨(58)는 두 달 전 5억원짜리 다가구 주택을 사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대기업인 E사를 그만두고 퇴직금과 그동안 번 돈 10억원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고 이자로 생활해 왔다. 하지만 금리가 자꾸 떨어져 이자만으론 고등학생인 막내의 학원비와 생활비를 댈 수 없어 임대사업을 시작한 것.

몇 해 전 초등학교 교장을 하다 은퇴한 김모씨(70·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1억원으로 작년 초부터 주식 투자에 나섰다가 5000만원을 잃었다. 주가가 몇 달 만에 두 배로 오르고, 같은 퇴직자 중에도 큰 이익을 남겼다는 소리를 듣고 성급하게 나섰다. 은행 금리로는 살 수 없어 주식투자를 시작했지만 피같은 퇴직금만 날리고 말았다.

연세대 이화여대 등 서울 소재 10개 대학은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신탁이 운용하는 사모펀드에 돈을 맡기고 있다. 은행 이자만으로는 학생들의 장학 및 복지사업을 제대로 벌일 수 없기 때문. 김영수 전 튜브투자자문 사장은 “은행 예금금리가 너무 낮아지자 연 10%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헤지펀드 형태의 사모펀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올바른 재테크 설계로 밝은 미래 준비〓직장 생활 7년째인 박모씨(34)는 올해 초부터 노후대비를 포함한 재테크에 대해 하루 30분씩 고민하고, 무엇을 했는지를 일기로 쓰고 있다. “이전에는 열심히 살면 언젠가 내집도 사고 아이들 공부도 넉넉히 시키며 부모님도 편안히 모실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며 “40대가 되기 전에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떻게 굴릴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너스 금리시대 실천재테크’는 다음호부터 구체적인 투자운용 전략을 안내한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생계-재산-오락型‘3개의 주머니’만들자 ▼

외국계 제약사에 다니고 있는 김인진씨(33·서울 서대문구 창천동)는 3년 전 3000만원을 들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30%선이지만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좋은 공부했고 언젠가 본전은 찾겠지”라며 느긋해 한다. 이런 여유는 투자자금을 생계용 자금과 분리해 다룬 데서 나온다. 생활비와 결혼자금은 따로 모으면서 남는 돈만 투자하고 있는 것.

재테크에 성공하려면 목적에 따라 돈을 구분해서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투자가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고 ‘벌면 신나고 잃으면 안타까운’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에선 ‘3개의 주머니’ 방법이다. 즉, 생계용 재산형성용 오락형 주머니를 만들어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생계용 주머니는 수익률을 따지지 말고 안전한 상품에 넣는다. 국공채 위주의 MMF나 저축상품이 예. 입맛 당기는 투자 대상이 나와도 이 주머니를 손대지 않는다.

재산형성 주머니는 노후생활 대비, 내집 마련, 자녀결혼자금 등에 적합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나이와 투자환경에 따라 주식과 간접상품에 분산 투자한다. 예를 들어 젊을 때는 80%를 주식에 투자하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높여가는 방식이다.

오락용 주머니는 ‘고위험 고수익’ 투자의 종자돈으로 활용한다. ‘재산의 10%는 즐긴다’는 기분으로 개별 주식종목이나 투기성 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다.

강창희 PCA투신운용 투자교육연구소장은 “자산을 운용할 때 각각의 주머니를 다른 목적으로 건드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3개월마다 수익률을 평가하고 이에 따라 비중을 조정하는 게 좋다”고 권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금리 저공비행 지속될듯 ▼


금리(金利) 또는 이자율이란 돈의 값어치다.

지금 예금통장에 들어있는 100만원의 값어치는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은행 예금은 대출이나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매입을 통해 기업으로 흘러들어간다.

기업은 이 돈으로 공장을 짓고 종업원을 고용해 사업을 벌인다. 사업 결과에 따라 지금의 100만원이 1∼2년 뒤 150만원이 될 수도, 110만원이 될 수도 있다. 사업이나 투자를 통해 지금 빌린 돈이 앞으로 얼마나 불어날지를 나타내는 비율이 곧 금리다.

금리는 돈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가계와 정부도 돈을 빌려 쓰지만 가장 영향력이 큰 자금 수요처는 기업이다. 유망한 사업 기회가 얼마나 많으냐와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지가 금리를 결정한다.

1960∼80년대 고도성장 시기에 한국 기업들은 남의 돈을 빌려 대규모로 사업을 했다. 많이 만들어 파는 대규모 설비투자 및 대량 생산 방식이었다. 비업무용 땅과 건물 투자에도 열을 올렸다. 자연히 돈을 많이 빌려야 했다.

그러다 차츰 물량공세 위주의 성장 전략이 국제 경쟁에서 통하지 않게 되자 방향을 틀었다. 돈을 적게 들이고 가급적 남의 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생산성 향상 위주의 투자 방식으로 바뀐 것. 한 예로 최근 산업은행이 2800여곳의 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설비투자 계획은 15% 증가했는데도 외부금융은 19% 줄어들었다.

이처럼 자금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 시중 자금은 넘쳐나고 있다.

주식 및 채권시장이 발달하고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금융자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자금시장 구조가 만성적인 초과수요에서 만성적인 유동성 과잉으로 바뀌어가면서 금리는 10년을 주기로 큰 폭으로 하락하는 계단식 하향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70년대에 30%대에 머물던 금리는 80년대에 20%대, 90년대에 10%대로 떨어지더니 2000년대 들어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다. 외환위기 직후의 일시적인 고금리는 환율 폭등과 금융시스템 붕괴에 따른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피데스투자자문 김한진 이코노미스트는 “경제가 고도성장 단계에서 안정 성장기로 진입하면서 금리가 하향 안정화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라며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앞으로 두 자릿수 금리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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