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시대]<2>라이프사이클 재테크 시대

  • 입력 2003년 4월 9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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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매달 한 차례 음악회나 영화관에 가고, 1년에 한 번씩 종합 건강검진을 받고, 피트니스센터에 나가 건강을 유지하고, 1년에 한 번쯤은 해외여행도 하고….

45세 직장인 A씨는 적어도 이 정도의 품위는 지키면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정말 이런 노후생활이 가능할까?

▽쉽지 않다〓이 계획대로라면 A씨는 연간 2000만∼2500만원의 여유 생활비용이 필요하다. 전체 노후생활비는 여기에다 의식주 해결에 드는 기초생활비용을 합해서 계산한다. 지난해 4·4분기(10∼12월) 55세 이상 근로자가구의 매달 평균 기초생활비는 140만원. 전체 소비지출 179만원에서 여유생활비용과 겹치는 교통비, 교육비와 교양오락비를 뺀 액수다.

요컨대 A씨의 연간 노후생활비는 기초생활비 1680만원에 여유생활비 2000만∼2500만원을 더한 3600만∼4200만원선. A씨가 60세에 은퇴하고 부부가 함께 80세까지 살 경우 마련해야 할 노후생활자금의 최저치는 △물가를 감안하지 않으면 3600만원×20년=7억2000만원 △물가 4% 상승을 가정하면 8억6400여만원이다.

A씨가 △60세 이후 국민연금에서 매년 600만원을 받고 △은퇴 시점까지 모은 재산이 2억원일 때 △주식 대 채권의 투자비중을 2 대 8로 해서 6%의 투자수익률을 거두려 하면 연 2349만원, 즉 매달 195만원을 투자 또는 저축해야 한다. 연봉 4000만원의 A씨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액수다. 목표수익률을 9%로 올리면 매달 140만원만 투자하면 되지만 이 경우 주식 대 채권의 투자비중을 8 대 2로 바꿔야 한다. 어느 쪽이든 한국의 평균적인 30, 40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다.

▽방법이 있긴 있다〓첫째로 목표, 즉 은퇴 이후의 생활수준을 낮춰 잡으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 하지만 누구나 이것은 마지막 대안으로 생각한다.

둘째, 투자 기간을 늘려 잡으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노후 설계 및 투자를 30대부터 가급적 일찍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고 결혼도 서두르고 가급적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게 낫다.

셋째,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기예금 같은 저금리 상품의 비중을 줄이고 주식 같은 고수익 고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넷째, 퇴직 전에 새나가는 지출을 줄인다. 특히 퇴직 전 지출의 30∼40%를 차지하는 자녀 교육비를 과감히 낮춘다. 대학 학비를 절반만 대주고 나머지는 스스로 벌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 특히 집은 물려주지 않는다. 집은 인생을 뜨기 직전에 드는 막대한 의료비용을 대는 용도로 예비해두고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재무 설계, 빨리 현실적으로〓계산기만 몇 번 두드리면 나오는 이런 냉정한 계산과 현실의 간격은 너무나 넓다.

‘2002년 사회통계’ 조사에 따르면 ‘자녀와 같이 살고 싶다’는 60세 이상 응답자의 비율이 53%로 나타났다. ‘노부모 부양을 자식이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도 71%로 4년 전 90%에서 크게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다. 반면 지난해 광고대행사인 대홍기획의 조사에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더 좋다’는 응답은 58%로 1992년 70%에서 크게 떨어졌다.

가구주의 노후 대비 방법으로는 공적연금(28%), 사적연금(16%), 예금 및 적금(14%) 등이 주를 이뤘다. 부동산(4%), 주식(0.2%) 등 마이너스 금리를 극복하는데 유리한 투자대안의 비중은 미미했다.

더욱 큰 문제는 아직도 적지 않은 중년층이 ‘그때 가면 어떻게 해결되겠지’하는 식으로 노후설계를 막연히 미루고 있는 점이다. 2002년 통계청 조사에서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가구주는 64.5%에 그쳤다.

재무설계사들은 “국가나 제도, 또는 자녀를 믿고 미루다가 40대가 돼서야 노후를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면서 “투자 기간은 짧고 요구 수준은 높은 이런 고객의 입맛에 맞게 재무 설계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도움말=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 임계희 한국파이낸셜플래너협회 교육분과위원장)

이철용기자 lcy@donga.com

생애주기별 재테크 플랜
구분20대30대40대50∼60대
목표결혼자금마련, 내집마련준비시작내집마련 완료, 자녀교육자금, 노후대비 시작노후대비 본격시작, 주택확장,사망에 대한 위험관리장기간병비용 마련 등 노후대비에 주력
키워드종자돈 마련을 위한 ‘절제와 노력’자산형성의 핵심기, 대출 등을 활용한 적극적 투자무리한 교육비 자제, 보수적 재테크 비중 확대이자지급 등 인출 기능 강화된상품에 주력
활용할
금융상품
상호부금, 장기주택마련저축,주택청약예·부금주택마련-생애최초주택자금과 10년 이상 장기대출 활용, 종신보험과 연금보험연금보험의 불입액 증가, 지수연동예금과 펀드 등 일부 고수익 상품후순위채,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MMDA)과 머니마켓펀드(MMF), 생계형 저축(65세 이상)

▼나이별 재테크 포인트 ▼

한 남자가 있다. 직장생활의 초기 1, 2년은 거의 저축을 하지 않았다. 직장을 잡지 못한 친구 등 가까운 친지들을 챙기고 나면 남는 것도 별로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지출이 수입보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졌다. 안정된 기반을 갖추지 못한 40대엔 “결판을 내야겠다”며 무리하게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인생 역전’을 꿈꾸기에는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돌이켜봤다. 결론은…. 한번도 ‘인생의 재무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

젊을 때는 ‘생애주기 재무설계’에 무심하기 쉽다. 그러나 대가는 혹독하다.

인생의 각 단계에 성취해야 할 과업이 있는 것처럼 재무적 측면도 마찬가지다. 시기에 따라 성취해야 할 재테크 목표가 있고 이를 위한 방법이 있다.

20대는 ‘터를 닦는 시기’다. 이때를 허송한 사람은 기초공사가 부실한 건물이나 ‘잘못 채워진 단추’가 된다. 총수입의 30∼50%를 모아 결혼자금이나 주택마련자금의 종자돈을 마련한다. 장기주택마련저축이나 상호부금처럼 장기, 고이율 상품에 일정액을 불입하거나 주식형 상품에 분산 투자하는 것도 좋다. 장기주택마련저축은 최고 3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이자보다 세액이 더 크다. 주택 마련의 첫걸음으로 청약 관련 예·적금에 가입한다.

30대는 가족 형성기이며 재테크에서도 ‘뼈대 형성기’다. 이제까지 없었던 자녀교육비 등 지출도 커지지만 내 집을 마련하는 게 좋다. 20평형대부터, 구입자금의 30∼40% 정도를 대출 받아 구입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최고 7000만원까지, 연 6%, 최장 20년 만기)을 이용하거나 현재 논의 중인 10년 이상의 장기대출을 이용한다. 연말정산에서 이자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 개인연금이나 종신보험으로 노후대비도 시작한다.

40대에는 ‘명암’이 갈린다. 20, 30대에 안정된 기반을 만들었다면 ‘굴리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위험과 수익률’이 적당히 결합된 상품이 좋다. 문제는 사교육비 부담이 지나치게 커 노후대비 자금을 갉아먹는다는 것. 노후자금 마련에 주력해야 하므로 사교육비를 ‘냉정히’ 줄이고 30대에 시작한 연금의 불입액을 늘린다.

50대 이후는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이자 지급처럼 인출기능이 강화된 상품을 선택한다. 퇴직금을 몽땅 주식에 넣거나 원금에 전혀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장기 간병비용도 고려해 현금으로 1000만원 정도를 갖고 있는 게 좋다. 은행의 후순위채는 이자가 안정적으로 5년 동안 나오며 금리도 높은 편.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이나 머니마켓펀드(MMF)처럼 입출금이 자유로운 상품에 관심을 둔다. (도움말=하나은행 재테크팀 김성엽 팀장, 현대증권 상품개발팀 심완엽 대리,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복리의 마술 ▼


고대 중국의 한 황제가 장기판을 개발한 사람에게 상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고 물었다.

“장기판의 첫번째 칸에 콩 한 톨을, 두 번째 칸에는 두 톨을, 그 다음엔 네 톨을 올리는 식으로 2배씩 칸을 모두 채워주십시오.”

임금은 선뜻 승낙했지만 곧 궁전의 곳간을 다 비우지 않고서는 그 요청을 들어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마지막 81번째 칸에 가면 무려 25자리 숫자만큼의 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복리(複利)의 마술’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복리상품에 가입하면 이자에 이자가 붙으면서 수익이 급격히 불어난다. 1년 동안 10%의 수익률로 100만원을 투자해 이자 10만원을 얻었다면 다음해 수익은 원금 110만원(100만원+10만원)의 10%인 11만원으로 늘어나는 식이다.

초기에는 최초의 원금에만 이자가 붙는 단리(單利)와 큰 차이가 없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원리금이 엄청나게 달라진다.

현재 금융시장에서 이 정도의 마술은 기대하기 어렵다. 금리가 워낙 낮은 데다 복리 예금 상품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 복리 효과를 얻으려면 매년 계좌를 옮겨 불어난 원금을 다시 예치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펀드 투자에서는 원칙적으로 복리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도중에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다면 과거 복리로 늘어난 투자수익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우려도 있다.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저금리 상황에서 복리효과는 기대만큼 높지는 않다”면서도 “일찍이 복리 상품에 가입해 장기간 보유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는 점만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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