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피란민 캠프 르포]
파편 박혔던 소녀 “평생 갈 고통”
피란민 1320만명 중 절반이 아동, 전쟁 중 1000명 가까이 사망-부상
인신매매-성범죄 위험에도 노출 “하루빨리 불행이 끝나기만 기도”
아빠 잃은 아홉살 안나… 전쟁 상처 깊은 우크라 어린이들 17일 우크라이나 르비우 임시 거주소에서 만난 안나.
전쟁으로 아빠를 잃은 안나는 놀이터에서 해맑게 뛰어 놀다가도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왼쪽 사진).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르비우의 다른 임시 거주소는 보호 어린이가 100명을 넘자 임시 유치원을 만들어 보살피고 있다(오른쪽 사진). 르비우=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르비우=강성휘 특파원2022년 4월 8일. 우크라이나 16세 소녀 안나 코베츠는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이 머리 위에서 터진 그날을 매일 곱씹는다. 우크라이나 동부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에 두 차례 거대한 폭음이 덮친 건 오전 10시 반경. 9세 여동생을 끌어안고 웅크린 코베츠 옆구리에 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지독한 인명 살상 때문에 100여 개국에서 사용이 금지된 집속탄 파편이 파고들었다. 기차역은 아수라장이 됐다. 코베츠 옷에 배어난 피가 누구 것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날 폭격으로 피란길에 오른 우크라이나 어린이 21명을 포함해 50명이 숨졌고 98명이 다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6개월을 넘으며 어린이 청소년들의 인권이 위기에 처했다. 동아일보는 17, 18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우크라이나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만났다. 인터뷰는 아동과 보호자, 임시 거주소 관계자 동의를 받아 이뤄졌다.
○ 취재 당일에도 “팔 잘린 소녀가 실려 왔다”
코베츠는 각종 정밀검사 끝에 3개월 뒤인 지난달 몸속에서 2cm 길이의 파편을 꺼냈다. 흉터는 옆구리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남았다. 르비우 임시 거주소에 머물고 있는 코베츠는 18일 기자에게 “눈을 감으면 바로 옆에서 파편을 머리에 맞아 숨진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 모습이 떠나질 않는다. 평생 나를 따라다닐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날 찾은 르비우 아동종합병원 의료진은 숨 가쁘게 움직였다. 전날 동부지역에서 러시아 미사일 공격을 받아 한쪽 팔을 잃은 채 실려 온 8세 소녀를 긴급하게 수술해야 했다. 수술을 마친 영국인 자원봉사 의사는 “우리에게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부모를 잃고 전신 및 기도(氣道)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채 후송된 8세 남자 어린이는 홀로 영국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의료시설이 열악해 중상을 입은 어린이 대부분은 해외로 보낸다”며 “부상도 부상이지만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전날 르비우의 다른 임시 거주소에서 만난 안나(9)는 4월 7일 러시아군 박격포탄에 아빠를 잃었다. 르비우에서 약 850km 떨어진 고향 동북부 하르키우를 떠나 엄마, 외할머니와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겹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외할머니 유라 사모파노우 씨(50)는 “친구들이랑 잘 놀다가도 갑자기 혼자 훌쩍이는 일이 잦다”고 했다.
○ “중국인들, 우크라 영아 인신매매 시도”
유엔과 국제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피란민 1320만여 명 중 어린이는 약 6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전체 어린이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8월 21일까지 1000명 가까운 어린이가 숨지거나 다쳤다. 하루 평균 어린이 사상자가 5명이 넘는 셈이다.
코베츠나 안나처럼 우크라이나 정부나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 어린이들은 인신매매나 성범죄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실제 이달 14일 우크라이나 영아 2명을 국경 밖으로 빼돌리려던 중국인 2명이 붙잡혔다. 수사 당국은 이들이 불법 입양이나 장기밀매를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6월까지 보고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성범죄 124건 중 상당수는 여아가 대상이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전쟁 관련 성범죄는 피해자가 나서기를 꺼리는 데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더욱 파악하기 어렵다”며 “문제는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전했다.
임시 거주소를 비롯한 피란민 구호시설은 늘어나는 전쟁 아동 피해자를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르비우 임시 거주소는 아동 수가 3분의 1인 100명을 넘자 지난달 임시 유치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관리자 안드리 플라토시 우크라이나 정교회 신부는 “영하 20도를 밑도는 겨울 추위에 아이들이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하루빨리 이 불행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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