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격과 조롱의 연속, 난장판 된 美 대선 토론…“역사상 최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30일 14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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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90분 내내 반복된 끼어들기와 말 끊기, 말꼬리 잡기, 인신공격과 거친 설전 속에 미국의 비전이나 정책은 없었다. 29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첫 TV토론은 시작부터 양 측의 격돌 속에 유례없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토론”, “민주주의에 해를 끼친 끔찍한 토론”이라는 혹평을 내놨다.

●토론 질서 무너진 혼란의 무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케이스웨스턴리저브 대학에서 폭스뉴스 앵커인 크리스 월러스의 진행으로 열린 이번 토론은 △대법관 임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인종차별과 폭력시위 △트럼프 및 바이든의 기록들 △선거의 진실성(integrity)의 6개 주제로 나눠 15분씩 진행됐다. 각 후보에게는 2분의 답변 시간과 함께 추가 토론 시간이 주어졌다.

두 후보는 서로 팔꿈치 인사도 없이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곧바로 토론에 들어갔다. 첫 번째 주제인 대법관 임명 강행을 놓고 바이든이 “이미 대선 우편투표가 시작돼 수만 명이 표를 던진 시점인 만큼 선거가 끝난 뒤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대법관 선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자 트럼프가 “나는 3년 임기로 당선된 게 아니다. 4년이 임기다”며 곧바로 끼어들었다. 바이든이 “사법부의 미래가 표에 있다”며 투표를 독려하자 “그게 왜 표 위에 있느냐”며 말꼬리를 잡았다.

이렇게 시작된 트럼프의 끼어들기는 이후부터 몇 분 간격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는 바이든을 노려보며 “틀렸다” “사회주의자” 같은 말을 반복했고 2분간 공식적으로 주어진 상대방의 답변 시간을 무시한 채 자기 주장을 이어나갔다.

바이든은 이에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것으로 대응했다. 냉소적으로 피식 웃거나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오, 하나님” “맙소사” 같은 혼잣말을 수시로 내놨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듯했던 그도 토론이 격해지자 “완전히 틀린 말”이라며 트럼프의 말을 자르기 시작했다. “입 좀 닥치세요(will you shut up, man?)”라거나 “계속 떠드시지(keep yapping, man)” 같은 비아냥거림으로 응수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월러스 앵커는 수시로 “Mr. 프레지던트”를 외치며 제지했고, “내가 질문을 마치게 해달라”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두 후보의 설전 속에 이를 제지하려는 진행자까지 언성이 높아지면서 토론무대는 세 사람의 고함이 섞여드는 대혼란이 연출됐다. 각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조차 힘든 상황이 반복됐다.

●인신공격과 조롱, 비난의 90분


두 후보는 서로의 약점과 개인사를 놓고도 거세게 맞붙었다. 대선TV토론 직전 터진 납세 문제와 관련, 트럼프는 “나는 수백 만 달러를 냈다”고 주장했고, “(납세자료) 정리가 마무리되면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에 바이든은 “그는 세금 시스템을 남용해 학교 교사보다 세금을 적게 냈다”며 “당신은 미국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맹비난했다.

트럼프가 전사한 미군들에 대해 ‘호구’, ‘패배자(loser)’라고 불렀다는 보도를 문제 삼는 부분에서 바이든이 “군에서 복무했던 내 아들(장남 보 바이든)은 패배자가 아니고 애국자였다”고 하자 트럼프는 “어느 아들을 말하는 것이냐. 헌터 바이든이냐”고 받아쳤다. 비리 의혹에 시달렸던 바이든의 차남 헌터 바이든 문제를 꺼내든 것. 그는 “나는 보는 모르고 헌터는 안다”며 2015년 뇌암으로 사망한 보 바이든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인종차별 및 항의 시위와 관련해 바이든은 “트럼프는 폭동과 소요 사태가 그의 재선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오히려 더 기름을 붓고 있다”며 “트럼프 하에서 미국은 더 약해지고 병들고 분열적이고 가난해지고 폭력적이 됐다”고 했다. 이런 그에 맞서 트럼프는 “바이든은 47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했고 “왜 ‘법집행’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느냐”, “바이든은 경찰을 해체하려고 한다”고 공격했다.

●트럼프, 백인 우월주의자 비난 거부

트럼프는 진행자가 ‘이 자리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비난하겠느냐’는 질문에 “모든 것(문제)들은 좌파에서 오는 것이지 우파가 아니다”며 답변을 피했다. 진행자가 재차 같은 질문을 했지만 “안티파(극좌파 단체)와 좌파에 대해 누군가는 뭐라도 해야 한다”며 끝까지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대선의 최종 승자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승리를 선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느냐’는 질문에도 “수만 개의 투표용지가 조작된 것을 본다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고만 답했다. 또 “선거 결과를 몇 달간 모를 수도 있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바이든이 “내가 이겨도 져도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CNN방송은 이날 토론에 대해 “미국 정치사상 최악이자 명백히 끔찍한 토론”이라며 “유례없는 대혼돈의 토론은 앞으로 남은 2번의 토론이 어떻게 진행될 지에 대해 심각한 문제들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에 깊은 해를 끼쳤다”는 평가까지 내놨다. MSNBC방송도 “지금까지 유권자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상황이 무대에서 벌어졌다”며 “터무니없이(monstrous) 거칠고 품격 없는 토론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날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바이든이 어느 정도의 토론 실력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 77세 고령인 바이든은 잦은 실언과 더듬거리는 듯한 발언 때문에 이번 TV토론에서 트럼프 후보에게 밀릴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노리고 바이든의 약물복용 가능성까지 흘렸다. 그러나 이날 토론에서 말실수는 없었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듯 순간적으로 문장을 이어가지 못하는 불안한 장면만 몇 차례 나왔을 뿐이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화법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듯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앵커를 쳐다보며 쳐다보며 토론을 이어갔고, 카메라를 쳐다보며 ”투표하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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