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올림픽 민족주의’는 중국의 티베트 무력진압에 대한 세계 인권단체들의 항의와 성화 봉송 저지에 대한 중국인의 반작용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엔 ‘맹목적 애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폭력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자국인 폭력엔 침묵=“왜 한국 언론은 우리가 얻어맞은 것은 보도하지 않고 우리의 폭력행위만 보도하나?” 27일 서울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 봉송 보도를 본 중국 유학생들의 불만이다.
중국인들은 또 외국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거나 심지어 외국 상점에 대한 테러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공격 대상은 외국만이 아니다. 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듀크대의 한 광장에서 티베트 사태를 놓고 친중국 반중국 시위대가 대치했을 때 양측의 대화를 중재하려 한 중국인 유학생 왕첸위안(王千源·20·여) 씨는 민족반역자로 낙인찍혔다. 그의 고향 집엔 오물이 뿌려졌다.
▽중국 정부 묵인과 방조=수천 년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피해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중국 민족주의는 ‘관(官) 주도’ 성향이 강하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1919년 베이징대 학생들이 주도했던 반제국주의 운동인 5·4운동에서 거세게 표출됐다. 5·4운동의 주동자들이 후에 공산당 결성에 가담한 것이 관 주도 민족주의의 뿌리가 됐다.
중국 정부는 1978년의 개혁개방운동,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1991년 소련 연방의 해체 등을 거치며 공산주의 이념에 기대지 못하게 되자 체제 수호 이념으로 민족주의를 다시 부각시켰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 불만이 점차 증대하자 내부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해 왔다.
1994년부터 시작된 애국주의 교육은 당초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 내 단합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서방 국가의 견제가 날로 심해지자 점차 화살을 밖으로 겨누고 있다.
이번 민족주의 열기도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관영 언론들이 티베트 사태의 원인을 달라이 라마에 전가하고 서방 언론의 보도를 왜곡이라고 집중 강조한 데서 촉발된 것으로 분석된다. 관 주도 민족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목이다.
▽공산당에도 ‘양날의 칼’=하지만 이 같은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민족주의에 대해선 중국 공산당도 차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민족주의 전파의 선봉에 선 2억2000만 명의 누리꾼들은 중국 공산당 정부가 약속한 ‘장밋빛 미래’가 오지 않을 경우 언제든 중국 공산당에 칼을 겨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중국 정부가 ‘이성적 애국주의’를 강조하며 진정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씨는 최근 칼럼에서 “중국의 민족주의는 중국 정부에 정통성(legitimacy)을 부여할 수도, 반대로 정통성을 빼앗아 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논평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