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학들 ‘쩐의 한숨’

  • 입력 200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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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미래는 돈이 결정한다.”

미국 대학들은 지난해 학생 1명에 평균 2만4000달러(약 2200만 원)를 지출했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의 대학들은 그 절반도 안 되는 1만1000∼1만2000달러씩을 썼다. 이 같은 차이가 미국과 유럽 대학의 현저한 경쟁력 격차를 낳고 있다고 프랑스 주간 ‘르푸앵’이 분석했다.

▽가난한 프랑스 대학=2만6000명의 학생이 다니는 파리 4대학(소르본대)은 한 해 예산이 8600만 유로(약 1080억 원)다. 반면 미국 프린스턴대는 6677명의 학생을 위해 7억3000만 유로(환산)를 쓴다. 소르본대보다 학생 1명당 33배나 많은 돈을 쓰는 셈이다.

프랑스에서 대학생을 위해 쓰이는 돈은 중고교생에게 들어가는 돈에도 못 미친다. 학교에서 대학생 1명에게 지출되는 돈은 7200유로이지만 중학생에게는 7400, 고등학생에게는 1만170유로가 각각 쓰인다.

대학생의 등록금은 한 해 3300유로. 유치원 다니는 비용보다도 적고 고등학교 다니는 비용에 비하면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대학에 좀 더 많은 자율권을 줘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도록 하는 대학 개혁안을 최근 마련했다.

대학이 아니라 고등사범학교나 국립행정학교(ENA) 같은 그랑제콜(grands ecoles·프랑스의 독특한 고등교육 기관으로 일종의 특수 대학)을 다니려면 돈이 많이 든다. 고등사범학교의 경우 한 해 3만∼5만 유로다. 소르본대보다 10∼15배나 많다.

학생의 부모들도 이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졸업하고 5년 뒤에 회사 관리자가 되는 비율이 그랑제콜 출신의 경우 70%로 대학 졸업자의 33%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랑제콜에서 중산층 자녀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그랑제콜에 들어가려면 좋은 초중고교를 나와야 하는데 중산층은 원하는 교육구에 거주할 수 있는 능력도, 과외로 자녀의 소양을 키워 줄 여유도 부족하기 때문. 반면 대부분 그랑제콜 출신인 프랑스의 정치인과 경제인들은 자녀를 그랑제콜에 보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이러다 보니 폴리테크니크, ENA, 고등상업학교(HEC) 고등사범학교에 다니는 중산층 자녀의 비율은 1950년대 29%에서 1990년대 9%로 떨어졌다. 중산층 자녀가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평준화 교육으로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영국의 개혁과 한계=영국은 지난해 9월 대학 등록금을 1175파운드에서 3000파운드(약 560만 원)로 3배가량 인상했다. 학생들의 반발이 심해 토니 블레어 전 총리로서는 힘든 결정이었다. 2010년부터는 3000파운드를 초과하는 금액으로 올릴 수 있다. 상당수 대학들이 2010년 이후에는 등록금을 3배가량 더 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

이처럼 등록금을 올리려는 것은 영국 대학의 자금 사정이 프랑스 대학보다는 훨씬 낫지만 미국 대학에는 크게 뒤처지기 때문.

앨리슨 리처드 케임브리지대 부총장은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를 포함한 영국 대학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자금 부족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10년 안에 중국과 인도의 대학에도 밀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 돈이 없어 영국인보다 등록금을 10배가량 많이 내는 외국인을 많이 받아들이다 보니 질적으로 크게 저하된 상태”라며 “미국 대학처럼 기부금 모집과 펀드식 자금 운용을 통해 자금 확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식 대학 운영이 해답=미국의 대표 명문대인 하버드대가 보유한 재산은 290억 달러. 프랑스가 고등교육 전체에 쏟는 예산보다 많다.

미국 유명 사립대는 학비도 엄청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최근 하버드대 졸업연설에서 “나는 학위와 함께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했을 정도.

그러나 하버드대는 주로 졸업생들인 기부자에게서 막대한 자금을 모으고 전문적인 펀드매니저를 통해 월가가 부러워할 정도로 자금을 늘린다.

하버드대의 지난 10년간 투자 수익률은 평균 15.2%. 예일대는 이보다도 많은 17.2%였다. 수입은 교육과 연구에 투자되고 우수 학생과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해 쓰인다. 학교가 우수할수록 돈은 더 많이 몰린다.

이에 따라 대학은 가난하면서도 재능이 뛰어난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르푸앵’은 분석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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