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고어 “美에 대한 시각 6년전보다 훨씬 나빠져”

  • 입력 2006년 9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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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지난 대선의 경쟁자였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강한 어조로 비판해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홍콩=정미경 기자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지난 대선의 경쟁자였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강한 어조로 비판해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홍콩=정미경 기자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58)이 돌아왔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한 후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지 6년. 오랜만에 다시 대중 앞에 등장한 그는 “현재로서는 다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계획은 없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해 아직 대권 도전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12일 홍콩에서 이뤄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어 전 부통령은 “이라크 공격, 국내 도청 허용, 환경위기 무대응 등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미국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미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은 6년 전에 비해 훨씬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출연한 환경 영화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의 아시아권 개봉에 맞춰 홍콩을 찾았다. 이 영화는 그가 일반인의 기억에서 잊혀져 있는 동안 세계 곳곳을 돌며 벌인 지구온난화 강연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 준다.

예전보다 넉넉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정치적 의견 표명에서는 훨씬 날카로워진 그는 대권 도전 의사에서부터 대선 패배 후 개인적 소회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질문에 답했다.

―“6년 전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면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9·11테러 5주년을 맞아 많은 이가 고어 전 부통령을 떠올리며 한 번쯤 던져 봤을 만한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던진 이들에게 무슨 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다른 종류의 실수를 했겠지요(웃음). 그렇지만 부시 대통령보다는 작은 실수를 했을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미국을 통합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가 잘한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이후 부시 행정부는 대테러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이라크를 공격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빈 라덴이 아닙니다.”

―본인이 대통령이었다면 9·11테러 이후 무슨 일을 가장 먼저 했을 것 같습니까.

“저라면 중동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줄였을 것입니다.”

―메시지가 담긴 영화를 가지고 오랜만에 다시 대중 앞에 등장했는데 ‘정치적 컴백’이라고 봐도 되는지요.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나설 계획은 없습니다(I'm not planning to run).”

―“다시 입후보하지 않겠다(I will not run)”는 확실한 대답이 아닌 듯한데요.

“계획은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변입니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뉴욕 주를 위해 매우 효율적인 의정 활동을 폈다고 봅니다. 동료 상원의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줬고, 공화당 의원들과 초당적 협력이 필요할 때는 융통성도 보여 줬습니다.”

―대선에 나선다면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럴 경우 저는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으므로 대답하기 힘듭니다(웃음).”

―2000년 대선 당시 재개표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고어 진영도 별로 효율적인 선거 캠페인을 펴지 못했다는 비난이 많았는데요. 정치인으로서 본인의 약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정치인은 시류에 맞는 이슈를 개발해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앞서가는 이슈들에 매달렸습니다.”

―‘환경운동가 고어’가 ‘정치인 고어’에 가려서 제대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없나요.

“정치인, 그리고 대선 후보가 아니었다면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사실도 압니다.”

―영화에서는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한 모습의 고어라는 인물이 보입니다. 정치인 시절 다소 딱딱하던 인상이 많이 사라졌는데요.

“일반인들이 정치인에 대해 가지는 냉소적 시각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홍콩=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오존 맨’

온실가스 규제 전도사… 고향서 전문가 육성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올해 바쁜 여름을 보냈다.

영화 ‘불편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와중에 시간을 내서 부인 티퍼 여사와 함께 고향 테네시에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1000명의 환경 전문 강사를 육성할 계획이다. 자신의 ‘분신’을 여럿 만들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겠다는 것.

그는 정치인 시절 지구온난화 관련 청문회를 개최하고 교토 의정서 채택에 앞장서면서 워싱턴의 ‘오존맨’이라는 평판을 얻어 왔다. 그러나 2000년 대선 캠페인을 하는 동안 환경문제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언급을 했지만 언론과 유권자의 관심을 얻지 못한 것이죠. 2000년 유세 중 1500억 달러 규모의 화석연료 규제 10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뉴욕타임스도 24번째 페이지에서야 조그맣게 언급하더군요.”

그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사업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2003년 설립한 투자회사 ‘제너레이션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GIM)’는 환경친화적 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한동안 ‘미스터 인터넷’으로 불렸던 그는 요즘 ‘정보 생태주의(Information Ecology)’를 주장하고 있다. 시민들이 미디어 독점, 특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TV의 유해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렇게 바쁘고 재미있는데 정치로 돌아가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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