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들끓게 한 ‘性戰’…사상 처음 친자확인 소송

  • 입력 2005년 1월 27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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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 확인소송이 이집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남녀 차별이 엄연한 이슬람 사회에서 여권 문제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국민은 TV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소송 배경=의상 디자이너인 힌드 엘 히나위 씨(27·여)는 지난해 10월 딸을 낳았다. 이어 이달 딸의 아버지가 유명 배우인 아메드 엘 피샤위 씨(24)라며 가정법원에 친자 확인 소송을 냈다. 그녀는 유전자(DNA) 검사까지 요구했다.

최근 이집트에서는 청춘 남녀가 몰래 계약 결혼하는 사례가 늘었다. 이를 ‘우르피(urfi) 결혼’이라고 부른다. 신랑이 아파트를 사서 가구를 갖춘 뒤 신부에게 금 장신구를 주는 전통 결혼은 부담이 크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일부 부유층은 계약 결혼을 엽색 행각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히나위 씨는 피샤위 씨와 계약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피샤위 씨의 TV 출연을 돕다가 우르피 결혼을 했다는 것. 지난해 봄 그녀가 임신하자 피샤위 씨는 정식으로 결혼하자며 ‘몰래 결혼’을 서약했던 계약서를 달라고 한 뒤 빼돌렸다는 것이 히나위 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피샤위 씨는 결혼은커녕 TV 녹화장 밖에서는 히나위 씨를 만난 적도 없다고 반박한다.

▽기존 관행에 도전=이집트에서는 계약 결혼이 공개되는 것을 금기시한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다고 보기 때문. 상류층 가문의 처녀가 임신을 하면 낙태한 뒤 처녀막 재생 수술을 해 집안에서 주선한 상대와 결혼하는 게 관행이다.

가난한 집에서는 부친이나 남자 형제들이 임신한 딸이나 오누이를 살해해 집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예 살인’ 풍습도 남아 있다.

히나위 씨는 “나는 옳은 일을 했고 아무 것도 감추지 않았다”며 “내 딸은 결국 남편의 성(姓)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인 그녀의 아버지 함디 아브도 엘 히나위 씨는 “가문의 명예와 섹스는 별개의 문제”라며 딸을 거들고 나섰다. 이것도 이슬람 사회에서는 이례적이다.

친자 확인을 위해 DNA 검사를 요구한 것도 이집트에서는 처음이다. 6개월 전 성폭행 형사소송에서 처음으로 DNA 검사가 실시됐을 뿐이다.

이집트의 여권론자들은 힘을 합쳐 “여성을 성(性)의 객체가 아니라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대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이집트의 전통 가정이 무너졌다고 개탄하며 히나위 씨 가족을 비난한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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