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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1월 19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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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은 물론 중국에 진출한 은행이나 기업에 배달된 신문도 마찬가지였고, 동아일보뿐 아니라 다른 한국 신문들도 해당 지면이 모두 찢겨 나가고 없었다. 교민들에 따르면 중국 공안이 배급소로 나와 관련 기사가 실린 면을 잘라 갔다고 한다.
한국 언론뿐이 아니다. 17일 베이징발로 자오쯔양 사망 관련 특집방송을 내보내던 미국 CNN은 돌연 방송이 10분간 차단됐다. 일본 NHK 국제방송 ‘NHK 월드 프리미엄’도 이 기사를 보도하는 순간 중국에서는 방송이 중단됐다.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방송을 당사자인 중국 사람들만 보지 못한 것이다.
외신이 이럴 정도니 중국 국내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 방송들은 자오쯔양 사망 소식을 아예 다루지 않았다. 대부분의 신문은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한 내용을 받아 아주 짤막한 부고 기사로 처리했고 그나마 보도하지 않은 신문도 있다.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리고, 2008년 올림픽을 개최하고, 21세기 중반이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중국의 정치민주화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다.
하기야 바로 얼마 전 우리는 중국의 언론자유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사건을 보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베이징 기자회견을 공안을 시켜 저지한 뒤 중국은 오히려 우리 측을 나무랐다. 그러나 중국의 구구한 설명을 그쪽 시각에서 이해해 보려 해도 한 가지만은 납득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기자회견을 하려면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엄혹했던 한국의 군부독재 시절에도 기자회견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중국 당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치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불씨만 있으면 시위나 소요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다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린 톈안먼 사태에 대해 ‘애국학생의 애국운동’이라고 폭탄발언을 했던 자오쯔양의 죽음은 충분히 불씨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불만은 분출구를 찾지 못할 때 더욱 커진다. 쌓이는 불만이 두려워 신문을 통제하고 방송을 막으면 바로 그 이유로 불만이 누적되는 악순환의 고리로 중국은 들어서 있는 듯하다. 군부독재 시절 우리가 경험했던 바다.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며 중국은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은 이제 1000달러를 넘었을 뿐이다. 아직은 발전의 초기 단계다. 과거 한국의 경험으로 볼 때 현 단계에서는 지금의 시스템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높아진 뒤에도 국민의 민주화 욕구를 억누른 채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할까. 역사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김상영 국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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