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완패한 일본 외교

  • 입력 2002년 5월 21일 18시 34분


중국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에 들어갔다 중국 무장경찰에 연행된 장길수군 친척 5명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총력 외교전’은 일본의 완패로 굳어지고 있다.

8일 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 일본은 호기롭게 나왔다. 중국 경찰이 일본의 주권을 침범했다며 중국 정부는 사과를 하고 5명의 신병을 일본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제는 “탈북자에 대한 직접 조사 요구는 접을 테니 하루빨리 제3국으로 출국시켜 달라”고 매달리는 입장이 됐다.

며칠 사이에 일본이 이처럼 힘이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도쿄(東京) 외교가에서는 “한마디로 일본이 너무 못 싸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 외무성이 13일 발표한 현지조사 결과가 오히려 일본을 더욱 곤경에 빠뜨렸다. 일본이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중국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보고서에 없는 사실들을 잇따라 밝혔다. 일본 부영사가 탈북자가 준 편지를 읽었고, 사건 후 중국측에 전화를 걸었으며, 중국 경찰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는 사실 등이다. 일본측은 “그런 사실은 있었지만 중국 경찰이 영사관에 들어와도 좋다고 동의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에 급급했다. 일본측의 주장은 신뢰를 잃어갔고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평소 난민이나 망명자에게 인색했던 일본의 태도가 스스로를 궁지로 몰았다고 볼 수 있다. 양국간의 핵심 쟁점은 중국 경찰이 과연 동의를 얻고 영사관에 들어왔느냐는 것이다. 일본이 최소한 영사관 내에 들어온 탈북자만이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더라면 이는 현장에서 결론이 났을 문제다.

어느 나라든 난민이나 망명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꺼린다. 그러나 일본은 덩치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기대도 애써 외면해 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 외교관들이 난민이나 망명자 문제를 강 건너 불처럼 생각해 온 것이 화를 자초한 셈이다. 일본이 앞으로 이 교훈을 어떻게 살릴지 주목된다.

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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