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명품 브랜드 '바이저팬' 러시

  • 입력 2000년 10월 11일 18시 43분


한때 해외 대도시의 부동산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막대한 자금력을 과시했던 경제대국 일본. 그러나 요즘에는 거꾸로 긴자(銀座) 등 도쿄(東京)의 중심지가 해외 명품브랜드업체에 속속 팔려 나가고 있다. 9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진 데다 일본 업체들도 구조조정에 쫓겨 보유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

일본의 대표적인 시계 업체인 세이코. 불황을 맞아 매년 10% 가량 매출이 떨어지는 등 경영악화가 계속되자 97년 긴자의 노른자위 땅 600㎡를 프랑스의 에르메스현지법인에 매각했다. 그동안 긴자의 땅값이 비싸 사옥 마련은 꿈도 꾸지 못했던 에르메스는 98년 초 소유권이전 가등기를 하자마자 현금 일시불로 땅값을 지불해 세이코를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의 막스마라도 지난해 에르메스에서 가까운 곳에 땅 133㎡를 샀다. 그곳은 거품경제시절 일본 소비자금융업체인 레이크가 해외에서 매입한 명화를 전시하는 화랑으로 사용했던 곳. 막스마라측은 “긴자는 연간 20억엔(약 200억원)가량의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땅값 상환은 그리 어렵지 않고 도쿄 긴자 한가운데에 사옥을 두었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말한다.프랑스의 루이뷔통, 이탈리아의 프라다도 도쿄의 노른자위 땅 확보에 불이 붙었다. 프라다는 최근 명품상점이 밀집한 미나미아오야마(南靑山)의 사쿠라은행 건물을 헐고 새 사옥을 짓고 있다. 사쿠라은행의 사원복지시설로 쓰였던 이 건물은 은행 부실화의 주범으로 꼽혀왔다. 루이뷔통 역시 파산한 개인실업가로부터 진구마에(神宮前)의 1급지를 현금 일시불로 사들였다.

부동산업계의 추산에 따르면 이들의 매입가격은 프라다가 60억엔, 에르메스가 100억엔, 루이뷔통이 40억엔 정도. 긴자의 경우 평당 수천만∼수억엔을 호가하는 엄청난 가격이지만 이들은 오히려 “싼 가격에 샀다”며 흥분하고 있다.

해외 브랜드업체가 이처럼 부동산 매입에 나서는 또 다른 배경은 거품붕괴 이후에도 고가 브랜드 판매가 더욱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 에르메스는 지난해 일본에서 278억엔(약 2800억원·세계 시장의 25.9%)의 매출을 올려 그동안 세계 제일의 시장이었던 프랑스(24.5%)를 사상 처음으로 눌렀다. 루이뷔통도 일본에서 올 1∼8월 중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가량 늘어난 643억엔 어치를 팔았다. 이는 세계 전체 판매량의 3분의 1수준.

야노경제연구소의 이게우치 노보루(池內伸)수석연구원은 “해외 명품업체들은 일본의 시장성에 비하면 현재 부동산가격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들의 부동산투자가 일본의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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