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을 이긴다/일본]경영애로 심각할땐 해고 가능

입력 1998-01-20 20:12수정 2009-09-2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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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직장은 ‘경제적 터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을 소개할 때 “A상사의 누구입니다”라고 한다. 직장이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正體性)의 기초인 것이다. 일본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는 말은 그들의 직업관을 잘 보여준다. ‘열심히’로 번역되는 이 말은 ‘한 장소(직업)에 목숨을 건다’는 의미인 잇쇼켄메이(一所懸命)에서 유래했다. 이런 전통도 이젠 옛말이다. 경기침체로 종신고용이라는 일본적 가치는 막을 내리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1만6천3백65개의 기업이 도산했다. 도산기업 부채액은 14조2백9억엔으로 사상최악이었다. 실업률도 사상최고인 3.5%로 높아졌다. 노사간 임금협상인 ‘춘투(春鬪)’에서도 올해는 이례적으로 ‘고용안정’문제가 최대현안으로 떠올랐다. 일본경영자단체연맹은 “기업은 고용유지에 주력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기본급은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노동조합연합회도 고용안정대책을 주요 요구항목에 포함했다. 두 단체는 ‘일본경제 재생과 고용불안해소를 위한 요청’을 공동으로 작성해 정부에 제출했을 정도다. 일본에서 해고는 1개월전 통보로 가능하다. 그러나 사용주가 마음대로 해고하지는 않는다. 기업 분위기도 있지만 노사간 분쟁을 둘러싼 법원판례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종업원을 해고하려면 다음의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심각한 경영상의 애로가 있어야 하고 경영주가 해고조치를 피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또 대상자 선정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일본에서 해고를 둘러싼 갈등이 적은 이유는 노동자에게 이같은 ‘방어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실업사태 및 경제위기와 관련, 정부와 재계도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기존의 실업보험과 실업자 전직훈련 정도로는 자활이 쉽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본 노동성은 작년 11월 긴급대책을 마련, 실업자 재취업과 퇴직금의 원활한 지급을 직접 독려하는 한편 구인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또 대형도산기업의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고용조정 조성금’ 지원대상에 은행과 증권회사를 추가했다.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이같은 조치는 사회보장측면에 불과하다. 일자리 창출이 어렵기 때문에 고민도 크다. 미국과 달리 정보화 투자가 늦었던 일본에서는 경제구조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다. 재정구조 개혁때문에 공공투자 확대도 어렵다. 하지만 실업률이 높아지면 정부도 결국 고용안정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업자들이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속에서도 회사와 사회에 대한 배신감을 덜 느끼고 있다. 정부와 기업 사회전체가 실업의 피해를 최소화 단기화하는데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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