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망명/美정가 표정]『北 토라질까』걱정

  • 입력 1997년 2월 13일 20시 34분


[워싱턴〓이재호특파원] 黃長燁(황장엽)의 망명 신청은 남북관계는 물론 北―美(북―미)관계와 美―中(미―중)관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아올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황을 「태풍의 눈」에 비유하고 남북한과 중국 미국 등 관련 4개국이 이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할 경우 북한의 핵 위협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극에 달했던 94년 봄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물론 국제관례대로라면 황의 망명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의 자유의사가 확인됐다해도 서울행까지는 넘어야할 많은 관문이 남아있다. 니컬러스 번스 미국무부대변인은 12일 『황의 망명이 통상적인 국제 망명사건의 절차에 따라 다뤄지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이란 인물이 갖는 비중과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정세로 인해 문제가 이처럼 단순하지 만은 않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입장이 매우 어려워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황이 한국으로 가게 될 경우 북한의 격렬한 반발이 예상되고 이 반발로 인한 부담을 미국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미국의 대(對)북한정책의 핵심은 북한체제의 갑작스런 붕괴를 사전에 막는 이른바 「연착륙」(Soft Landing)에 있다. 황의 망명은 미국의 이같은 정책목표에 큰 손상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이미 황의 일탈로 인한 체제 동요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황의 망명을 「계획된 납치극」이라고 주장, 남북관계를 긴장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정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악화될 경우 당장 대북 경수로 사업에 차질이 예상되고, 북한은 이를 빌미로 제네바 기본합의의 불이행을 문제삼고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말하자면 북한이 황의 망명사건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제네바합의를 깨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 경우 미국은 잠수함 침투사건에 이어 또 다시 남북한 사이에 샌드위치 처럼 끼여 양측을 달래는 조심스럽고도 힘든 작업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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