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재판 전략은 ‘입 연 사람은 흔들리게, 입 닫은 사람은 더 꾹 닫게’로 요약된다. 의원들을 끌어내란 지시를 받았다는 군인들 증언이 쏟아져 나온 이상 ‘스피커’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역효과가 적지 않아 닫혔던 입들이 오히려 열리고 있다.
계엄 당시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차량을 운전했던 이민수 중사를 증언대에 세운 건 윤 전 대통령 측이었다. 당시 함께 있었던 이 전 사령관의 부관이 비화폰을 통해 “4명이 (의원)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들었다고 증언한 것에 반해 이 중사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진술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중사의 증언은 변호인들 기대와 정반대였다. ‘총을 쏴서라도…’ ‘계엄을 다시 하면 된다’고 말하는 대통령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이제 와 왜 말을 바꾸냐는 질문엔 “침묵하는 저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처럼 침묵을 깬 군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태도 달라진 이진우 여인형 곧 증인 출석
재판이 불리해지면 방향을 틀 법도 한데 윤 전 대통령은 더 세게 액셀을 밟는 쪽을 택했다. 의원들 끌어내란 지시를 처음 폭로했던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오자 윤 전 대통령은 넉 달간의 재판 거부를 멈추고 직접 나서 그를 신문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데 그런 지시를 했겠느냐, 계엄 두 달 전 비상대권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폭탄주를 10∼20잔 마셨던 그날 자리에서 시국 얘기를 했겠느냐고 몰아붙였다.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태도에 참기 힘들었는지 곽 전 사령관은 “이 얘기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그날 한동훈을 당신 앞에 잡아 오라고 했다. 당신이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했다”는 폭탄 발언을 내놓았다.
조만간 증인으로 나올 이 전 수방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도 윤 전 대통령으로선 안심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에선 말을 아꼈던 두 사람이지만 이후 각자 재판을 받으며 태도가 달라졌다. 이 전 사령관은 문을 부수고서라도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란 지시를 받았다고 결국 인정했다. 여 전 사령관도 “크게 후회하고 있다.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면서 지난 7월 증인신문을 포기했다.
이는 정치인 체포 지시 등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증인들과 다투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중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도 포함된다. 싹 다 잡아들이란 지시를 받았고, 여 전 사령관에게서 이재명 등 체포 명단을 받았다는 그의 진술에 이의가 없다는 것이다. 홍 전 차장은 13일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이 이때도 “업무 격려 전화를 했을 뿐”이라며 계속 잡아떼다간 홍 전 차장 역시 “이런 말씀까진 안 드리려 했는데”라며 어떤 폭로를 할지 모른다.
尹, 덮으려 할수록 더 큰 폭로 부를 것
의원 끌어내란 지시를 받았다고 줄곧 진술해 온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은 최근 재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 또한 부하들에게 (지시가) 전파만 안 됐다면, 거짓으로 그냥 (진술) 할까 엄청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전파가 됐고, 그게 사실이었다.” 계엄 당시 내내 켜져 있던 회의실 마이크로 대통령 지시가 부하들에게 다 전달돼 거짓말을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는 곽 전 사령관의 말과 비슷한 얘기다. 이게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유독 윤 전 대통령만은 12·3 계엄 이후 1년이 다 되도록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 계엄 직전 국무위원들에게 “막상 하면 별거 아니야”라고 했다던 황당한 인식에서 달라진 게 없다. 지금처럼 부하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전략을 계속 고수한다면 재판에 불리한 건 물론, 끝까지 비겁했던 대통령으로 역사에 각인될 것이다. 이제 내년 1월이면 1심 선고가 나올 예정이다. 스스로 진실을 털어놓을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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