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남, 피냄새 나는 ‘괴물’이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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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몬스터’서 살인마 열연 이민기

이민기는 “‘몬스터’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스릴러다. 긴장감만 찾으려 하면 영화를 반밖에 못 보는 격이다” 라고 했다. 황인호 감독은 멜로와 호러를 섞은 ‘오싹한 연애’에 이어 스릴러 영화 ‘몬스터’에 유머와 인간미를 담는 장르적 결합을 시도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민기는 “‘몬스터’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스릴러다. 긴장감만 찾으려 하면 영화를 반밖에 못 보는 격이다” 라고 했다. 황인호 감독은 멜로와 호러를 섞은 ‘오싹한 연애’에 이어 스릴러 영화 ‘몬스터’에 유머와 인간미를 담는 장르적 결합을 시도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민기(29)는 ‘초식남’이었다.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2007년)에서는 이모뻘 되는 불륜 상대인 김혜수에게 리드를 당했다. ‘오싹한 연애’(2011년)에서는 비실비실한 마술사였고, ‘연애의 온도’(2012년)에선 헤어진 여자에게 “노트북을 돌려 달라”고 진상을 떨기도 했다. 경상도 사나이지만 왠지 만만한 옆집 총각 같은, 무해(無害)한 얼굴로 남에게 피해 안 줄 것 같은 느낌의 남자.

하지만 황인호 감독의 ‘몬스터’(13일 개봉)에서는 그동안 감춰둔 육식동물의 야성을 드러냈다. 그가 연기하는 태수는 제목 그대로 괴물 같은 살인마다. 태수는 형 익상(김뢰하)에게서 회사의 비밀이 담긴 휴대전화를 구해 오라는 부탁을 받는다. 휴대전화의 주인을 찾던 태수는 우연히 복순(김고은)의 여동생을 죽인다. 성인이지만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수준인 노점상 복순은 동네에서 ‘미친년’으로 불리는 인물. 그는 동생을 죽인 태수에게 복수하려고 덤벼든다. 홍보문구 그대로 ‘미친년과 살인마의 대결’이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민기는 “살인마로 변신하기 위해 몸부터 바꿨다”고 했다. “먹는 음식만 달라져도 생각이 바뀐다고 하잖아요. 트레이너의 지시대로 183cm에 64kg이었던 몸무게를 80kg으로 늘렸어요. 그런데 운동을 했더니 도로 64kg이 됐죠. 그러는 사이 체지방은 4%로 줄었어요. 살인마 준비 완료!” 보통 성인 남성의 체지방은 15∼20%. 근육질이 된 이민기의 몸은 그가 도자기를 빚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도 젓가락 하나로 제압하는 태수는 은둔형 외톨이다. 형과 어머니만 빼고는 세상과 담을 쌓은 인물. 먹잇감을 찾아 먼저 공격하기보단 웅크리고 있다가 다가와 건드리는 상대를 물어뜯는다. “살인을 즐기는 인물은 아니에요. 상대의 고통에 대해 둔감한, 결핍이 있는 아이죠. 혼자 살아가고 가족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인물. 캐릭터에 빠져 들려면 그를 사랑해야 했어요.”

살인마와 미친년의 대결은 마지막 장면에서 피를 튀긴다. 태수가 괴물인지, 아니면 세상의 비열함이 괴물인지 관객은 생각할 거리를 안고 극장 밖으로 나오게 된다.

“고은 씨와 족발 뼈를 들고 싸우는 장면을 여름에 세트에서 촬영했어요. 족발이 썩어서 냄새가 진동하는데, 에어컨도 못 틀게 하더군요. 타박상과 인대가 늘어난 것보다 썩은 내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는 ‘해운대’(2009년)와 ‘퀵’(2011년)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구사하는 코믹 연기로 주목받았다. 코미디 연기에 소질이 있다고 슬쩍 칭찬을 건넸다.

“하하, 잘 모르겠어요. 제가 말이 많고 재밌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대부분 누나 많은 집 막내아들로 보시는데, (남동생 한 명이 있는) 장남입니다. 집에서는 하도 말을 안 해, 전화 받으면 ‘자다가 일어났냐’고 해요. 경상도 사내죠.” 그는 경남 김해에서 고교까지 나왔다.

다음 영화는 또 피비린내 나는 누아르 영화 ‘황제를 위하여’다. 부산을 배경으로 전직 야구 선수가 도박판에 빠져 끝없이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다.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한계가 빨리 보이지 않는 배우, 코미디와 누아르를 넘나드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영화 ‘드라이브’ ‘킹메이커’에 나왔던) 라이언 고슬링처럼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그의 등 뒤에서 피 냄새가 났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몬스터#이민기#살인마#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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