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the Air]4시간 웃음 중노동 “울면서 웃어요”

  • 입력 2008년 6월 24일 03시 01분


MBC ‘황금어장’ 웃음소리 녹화

주로 20대 여성 알바 동원 더빙

“시청자에 즐거움 주는데 보람”

문제 하나. MBC ‘황금어장’(수 오후 11시 5분)의 ‘무릎팍 도사’와 ‘라디오 스타’ 방영 도중에 깔리는 웃음소리는 기계음일까, 사람의 웃음일까.

답은 사람의 웃음이다. 매번 비슷하게 들리지만 이를 위해 녹화 때마다 4시간씩 ‘눈물 나게’ 웃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웃음을 파는 사람들’이다.

“자, 녹화 테이프 오기 전에 ‘호응 연습’ 한번 해볼까요.”(송승연 씨·23)

“놀랄 때.” “우∼.”

“대단할 때.” “오호∼.”

“알아들을 때.” “아하∼.”

“안타까울 때.” “아응∼.”

“굉장히 웃길 때.” “으하하하하∼.”

17일 오후 4시 경기 고양시 일산 MBC 드림센터 4층 더빙실. 33m2(약 10평)의 밀폐된 공간에 30여 명이 TV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들은 MBC ‘황금어장’ 중간에 삽입되는 웃음소리를 녹음하러 온 사람들.

방청객 없이 비공개로 녹화되는 ‘황금어장’의 특성상 웃음소리를 비롯한 더빙 작업은 방영 전 따로 진행된다. ‘황금어장’의 여운혁 책임PD의 말처럼 래핑 머신(Laughing Machine·웃음 기계)을 사용하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요즘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선호하는 분위기여서 일일이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고 있다. MBC ‘무한도전’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 등이 사람 웃음을 쓴다.

녹화 테이프를 보며 웃으면 되는 단순 노동 같지만 이 세계에도 질서와 전략이 있다.

일단 송 씨처럼 맨 앞에서 적절한 웃음 포인트를 짚어 주며 웃음을 유도하는 일종의 ‘반장’ 역이 있다. 3년간 웃음 더빙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송 씨는 사전에 녹화 내용을 숙지한 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파악한다. 그는 “0.5초 빨리 포인트를 잡는 게 관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장은 어디까지나 바람잡이일 뿐 억지웃음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다. 부자연스럽거나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은 편집을 통해 걸러진다.

프로그램 성격과 담당 프로듀서에 따라 원하는 웃음도 다르다. 예능 프로그램은 높은 성량의 ‘큰 웃음’을, 시사성이 가미된 프로그램은 조용하고 잔잔한 웃음을 요구한다. PD도 기계음처럼 자지러지는 웃음을 좋아하는 쪽도 있고 가식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웃음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녹음을 시작한 뒤 3시간 정도 지나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김모 씨는 “네댓 시간 배에 힘주고 웃는 것은 고된 노동에 가깝다”며 “웃다가 너무 힘든 나머지 눈물을 닦으면서 웃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아르바이트하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여성. 인터넷 카페나 동원업체를 통해 지원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중 방청객으로 나가기에는 외모에 자신이 없어 대신 이 일을 하거나, 한때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으러 온 사람도 있다는 것. 경력 3개월인 성정희(34·주부) 씨는 “한때 우울증을 앓다가 우연히 여기 오게 돼 자주 웃으며 예전 표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4시간 만에 녹음이 끝난 후 ‘웃음을 파는 사람들’에게 지급된 돈은 대략 8000∼9000원. 10년 전과 똑같은 가격이다. 공급이 많은 탓이다. 노력 대비 임금도 적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이지만 직업에 대한 보람은 적지 않다.

“잘 웃을 줄만 알면 별다른 자격과 조건이 필요 없으니 좋은 직업이죠. 비록 시청자들은 우리의 존재를 잘 모르지만 좀 더 TV를 즐겁게 볼 수 있도록 일조한다는 데 보람을 느껴요.”(성 씨)

염희진 기자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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