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본 '드라마속 허준']살아있는 허준을 보고 싶다

  • 입력 2000년 6월 25일 19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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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인기 시대극 ‘허준’이 27일로 끝난다.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고른 관심을 끈 ‘허준’의 인기요인 중 하나는 ‘참 인간’과 ‘참 의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바람이었다. MBC의 시청소감 공모에서도 허준의 인간됨과 의인(의인)으로서의 자세를 본받고 싶다는 글이 많았다. 이종태 한국의료평가센터소장이 양의의 입장에서 드라마속 허준의 미덕을 분석하는 글을 보내왔다》

의료대란이 수일째 계속되는 동안 MBC 드라마 ‘허준’을 시청하는 마음은 더욱 각별하다. 이번 주로 끝나긴 해도 ‘참 의료인’에 대한 강렬한 바람이 드라마 속의 허준을 통해 대리 충족된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환자를 대하는 허준의 손길과 마음에는 환자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그의 의료행위는 명예나 부를 추구하기 위한 게 아니고 오로지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는 의과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환자를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낸 피로 환자를 치료한다. 궁중의 내의가 된 그는 헐벗고 굶주린 환자들 밖에 없는 혜민서로 발령이 나자 다른 의사와 달리 더없이 기뻐하고 오히려 경험을 쌓아 의술을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 이같은 허준의 환자에 대한 사랑은 서양의학을 전공한 내 입장에서도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허준은 또 스승으로부터 물려 받은 의술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치료술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드라마에서 그는 스승의 시신을 부검한다. 이는 당시 유교 문화로 보아 자기 생명을 내놓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을 만큼 자기 희생적이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 ‘허준’에 빠져든 이유중의 하나도 허준의 이같은 헌신적인 자세에 매료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의료계는 어떤 모습인가.

예전에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항상 책을 찾아보거나 한가지 검사 결과를 정확하게 판독하기 위해 여러 의사가 함께 토론하고 밤 늦게까지 환자의 침대 옆에서 상태를 관찰하는 의사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일이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나는 전공의나 학생들을 가르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의료진인 간호사, 인턴, 1년차 전공의, 3년차 전공의, 4년차 병동 수석전공의, 전임의, 담당 스태프 중 단 한명이라도 환자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오진이나 의료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사는 의학적인 지식을 쌓기에 앞서 허준처럼 환자를 자기몸보다 더 사랑하는 것부터 체득해야 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진단 기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진단을 기계에 의존함에 따라 예전처럼 환자와 직접 대화를 통해 환자의 문제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일이 줄어 들었다. 특히 환자를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인간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하나의 질병을 가진 객체로 보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에 따라 이처럼 기계적인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한번쯤 겪은 환자나 보호자,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드라마속 허준이 ‘참 의료인’의 표상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허준 신드롬’이 점점 메말라가는 의료계에 자기 성찰의 계기가 돼 의료계가 ‘허준’의 행적에 한발자국 가까이 다가설수 있기 바란다.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 속의 병원에서 살아있는 허준을 만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종태<한국의료평가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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