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순익 대신 ‘꿈’으로 평가해야” vs “거품 조심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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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업 새 평가척도 찾기 논쟁
테슬라-아마존-페북-넷플릭스 등 순이익으론 기업가치 평가 어려워
한투증권 ‘주가꿈비율’ 지표 만들어 시장규모-점유율 따져 수치로 환산
일각 “새 척도, 참고로만 활용해야”

‘1108년.’

20일 현재 시가총액이 3931억 달러(약 445조 원)인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를 이 회사의 순이익(지난해 기준)을 모아 인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는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전통적인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이 1108배라는 뜻이다. 통상 PER가 12배보다 높으면 고평가된 기업으로 본다. 증권가에서는 PER가 1108배인 테슬라는 전통방식 가치 평가로 인식할 수 없는 ‘안드로메다 기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테슬라뿐 아니다. 올해 미국 증시에서는 PER가 100배 안팎인 종목이 숱하게 등장했다. 세계 1위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PER는 20일 기준 123배다. 페이스북(33배), 넷플릭스(88배) 등도 모두 고평가 기업으로 꼽힌다. 국내에서 9월, 10월 상장한 카카오게임즈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PER는 220배, 70배에 이른다. 공모주 열풍을 일으킨 SK바이오팜은 적자기업이라 PER를 따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PER나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전통적인 재무 지표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증권업계에서는 가치 평가 대안을 찾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14일 한국투자증권은 기존에 증권가에서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주가꿈비율(PDR)’을 실제로 산출하는 지표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해당 기업이 포함된 산업 전체의 성장성을 기업 평가에 반영하기 위해 시장 규모(TAM)와 현재 그 기업의 시장점유율 등을 고려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시가총액이 5조 원인 기업이 100조 원 규모의 시장에서 10% 점유율을 갖고 있다면 PDR가 0.5가 되는 식이다.

신한금융투자, 메리츠증권 등도 성장주 가격 평가 관련 보고서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두 증권사는 기업가치 평가 분야의 석학으로 꼽히는 애스워드 다모다란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의 ‘스토리’ 기반 가치 평가 방법론을 소개했다. 좋은 기업가치 평가는 기업의 성장성을 보여주는 △향후 5년간의 장기 매출 성장률 △영업이익률 △순자산 회전율 △자본비용 등의 스토리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산업 구조가 바뀌는 만큼 성장 기업의 가치 평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깊다”며 “새 가치 평가 모델 개발이 시대의 흐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증권가에선 PDR 등의 대안 지표가 급등한 주식 시세를 옹호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며 증시에 거품이 낄 때 나타나는 일시적 유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0년대 후반 이른바 ‘정보기술(IT) 버블’ 당시에도 기업의 실제 이익보다 외형인 매출을 중요 기준으로 삼아 성장주를 평가하기 위해 주가매출비율(PSR) 등이 만들어졌다가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리서치 센터장은 “기업은 벌어들이는 이익을 바탕으로 평가되는 게 기본”이라며 “현재 나오는 PDR는 참고 지표쯤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기업가치#성장기업#평가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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