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초과학 산업화 바란다면 교수들의 창업활동 막으면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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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3대 이공대 ‘ETH’ 구젤라 前 총장

리노 구젤라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전 총장은 ‘지식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아 대학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리노 구젤라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전 총장은 ‘지식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아 대학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의 기초과학이 산업으로 확대되길 바란다면 교수들의 창업과 기업활동을 제약해서는 안 됩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는 특허나 산업화 업무도 부가 업무가 아닌 대학이 해야 할 본래의 업무로 보고 적극 지원합니다. 20명의 전문가가 포진한 행정조직 지원도 그중 하나입니다.”

ETH는 영국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와 함께 각종 대학 평가에서 항상 유럽 3대, 세계 10대 대학으로 꼽히는 이공계 명문 대학이다. ETH의 리노 구젤라 전 총장을 3일 오전 대전 KAIST에서 만났다. 구젤라 전 총장은 KAIST와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더(THE)가 공동 주최한 ‘이노베이션 앤드 임팩트 서밋’의 기조강연자로 참석하기 위해 2일 방한했다. 그는 “지금까지 1억 편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학술 연구가 나오고 매년 7%씩 양이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단 한 번도 인용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지식 인플레이션시대’에는 과거와 결별한 새로운 대학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 대학에서 생산한 지식과 기술을 지역이나 산업 영역에서 적극 활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수와 학생이 기초연구 외에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언급했다. 구젤라 전 총장은 “보통 세계 대학들은 일주일에 하루 꼴인 20%의 업무를 외부 기관 및 기업 자문 등에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한다”며 “하지만 ETH는 나머지 80%의 대학 업무시간에도 산업과 협력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연구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현상의 특허를 얻고 산업화하는 것도 모두 교수의 업무로 본다는 뜻이다. 그는 “특허나 산업화에 필요한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수들이 모든 과정을 번거롭지 않게, 또 윤리적으로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20명의 상근자로 구성된 전담조직이 행정 처리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학생 교육으로 확장된다. ETH에서는 매년 1회 스위스의 기업 대표 500∼600명이 참석하는 기업·기술소개(피칭) 대회가 열린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자유롭게 특허나 기술 이전을 논의할 수 있으며 우승하면 우리 돈으로 1억∼2억 수준의 지원금을 받는다. 학교는 성공적인 학생 창업 사례를 뉴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알리고 정부는 벤처캐피털을 구성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그는 “이 덕분에 스위스는 현재 핀테크 분야 창업이 대단히 활발하다”고 말했다.

구젤라 전 총장은 “특히 학생 때부터 부딪쳐 보고 실패하는 경험을 익힌 게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학에서 도전과 실패를 먼저 경험하게 할 것을 권한다. ETH 학생들은 1학년 2학기 때부터 이론수업을 빼고 일단 무언가를 만드는 수업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정원 400명의 기계공학과 학생은 20명씩 20개 팀으로 나눠 ‘로봇으로 공을 던져 목표물을 맞히는’ 등의 과제를 직접 수행하며 문제 해결 경험을 쌓는다. 그는 “스위스에서도 실패는 힘든 경험이지만 실패에 관대한 분위기여서 창업을 향한 도전을 막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무작정 ‘한번 해볼까’ 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젤라 전 총장은 “연구가 심도 있게 뒷받침하지 않으면 기술 창업은 불가능하다. ETH는 연구 및 교수법 센터를 따로 운영해 과제 수행 중 자율적인 연구와 교육을 돕는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건 기초과학 연구 능력이 탄탄할 때 빛을 발한다”며 “여기에 이런 ’창의와 호기심, 혁신의 시공간”이 더해지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기초과학#산업#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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