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두고 어떤 ‘신호’를 상대방에게 보내고 그 의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펼치는 줄다리기와 같다. 이 협상의 중요성이 극대화되는 분야가 바로 정치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전통적으로 협상을 불완전한 것으로 봤다. 특히 협상을 통해 국가 간 지속적인 협력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 극대화에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정치학계에서 이 같은 믿음이 깨지고 있다.
조슈아 커처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연구팀은 미국 대학생 204명을 대상으로 개인의 성향이 협상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국가 간 협상 상황과 닮은 일대일 게임 형식으로 진행됐다. 게임 참가자는 총 15명의 상대와 일대일로 협상 게임을 벌였다. 각 상대와 10점을 놓고 어떻게 점수를 배분할지를 협상하는 게임이었다. 한 편이 5 대 5 혹은 7 대 3과 같이 분배 비율을 제안하면 다른 편은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만약 상대편의 제안을 거부할 경우에는 제비뽑기에 의해 당첨된 사람이 모두 득점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제비뽑기의 당첨률은 첫 매치에서는 30%로 낮지만 뒤로 갈수록 70%까지 높아지며 참가자들은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게임 참가 전에 본인의 성향이 ‘친사회적 성향’인지, ‘이기적 성향’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고안된 설문지에 미리 답을 한 상황이었다.
연구 결과, 친사회적 성향을 띤 참가자 그룹은 상대적으로 점수 배분에 있어 평등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상대의 제안을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비율이 높았다. 특히 친사회적 성향의 참가자 집단은 자신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모든 점수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이를 활용하기보다는 평등한 분배를 지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될수록 이기적 성향의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관대함을 악용하는 것을 보면서 친사회적 행위는 뚜렷하게 감소했다. 이기적 행위의 전염성이 확인된 것이다.
연구는 국가 간 협상에서 협상 파트너들 간 다른 성향의 조합이 협상 결과 및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상대방의 적대성을 미리 가정하고 협상 전략을 짤 경우 오히려 협상을 망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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